인간관계의 이해
2000년대 초반 한국에는 김삼순이,
글로벌하게는 브리짓 존스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나도 이 영화를 좋아해서 브리짓 존스 시리즈 영화를
다 보았지만 근 20여 년 전의 콘텐츠라
영화 속 소소한 설정은 거의 잊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달리기하다 러닝머신 TV로 잠시 본
딱 1~2분의 장면에서 현재 나의 상황이 겹쳐지며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다니엘(휴 그랜트)이 브리짓을 유혹하는 장면.
다니엘은 마크(콜린 퍼스)와 학교 동창이었지만
지금은 소원해진 관계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마크가 다니엘의 약혼녀와 바람이 났고
그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니엘은 아직도 그 상처를 가진 듯하고
마침 마크에게 비호감이었던 브리짓은
과거 사건을 듣고 다니엘에게 동정심을 가지게 되어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는데...
브리짓은 나중에 이것이 다니엘의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거짓말도 없던 사실을 지어낸 것이 아니라
사건에서 주어와 목적어를 완전히 바꿔 버렸다.
즉 다니엘이 마크의 약혼녀를 유혹하여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그로 인해 마크는 파혼한 것이 진실이다.
다니엘은 마크를 두 번 죽인 것과 다름없다.
과거에는 약혼녀를 뺐었고,
현재는 피해자 코스프레하며
자신의 잘못을 피해자에게 뒤집어 씌우는.
다행히 브리짓은 진실을 알게 된다.
겉으로만 매력적이지만 가식적인 다니엘을 떠나
퉁명스러워도 진실한 마크와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나는 이런 일이 영화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아주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A가 말했다.
예전에 B가 A를 부러워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A에 대한 험담을 했다고,
그래서 B랑 한동안 서먹했다고 말이다.
처음에는 A의 말을 믿었다.
여유로운 가정환경이나 외모적인 조건이나
객관적으로 봐도 A의 상황이 더 좋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A와 더 친했기 때문에
A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는데,
사실은 주어와 목적어가 바뀌었다는
사실에 의아했다.
그리고 A의 거짓은 그 하나가 아니었다.
또 다른 인물 C에 대한 험담을 했는데,
그 역시 파헤쳐 보니
C가 했다고 한 행동은 사실 본인이 한 행동이었다.
A가 나에게 한 말 중
어디까지나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불가였다.
A에 대한 실망이 큰 만큼
나에 대한 자책도 컸다.
친하다고 그 말을 여과 없이 그대로 믿은
내가 어리석었던 걸까?
내 친구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의심을 풀고 무한 신뢰를 했던
나의 태도가 잘못이었을까.
앞으로 관계를 맺을 때마다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안테나를 곤두세워야 하나 등등
마침 상담을 받을 때여서
상담사 선생님께 A의 심리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함께 했던 시간마저 후회가 될 만큼
여파가 컸기 때문에
내가 과연 이해할 수 있을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담사 선생님의 말씀은
그런 상황은 많다며
A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라고 하셨다.
자신은 완벽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자신의 부족함을 가리고 싶은,
거짓말을 해서라도 숨기고 싶은
그런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말이다.
듣고 보니 머리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라고 완벽한 인간은 아니지 않는가.
<브리짓 존슨의 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니엘이 거짓말을 한 것도
결국 본인이 마크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서라도
본인의 치부를 가리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얕은꾀를 부려
남들이 말하기 전에 본인이 먼저 말함으로써
선수쳤다고 할 수 있지만
거짓이 어디 오래가는가.
결국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인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아웅다웅 한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 이해가 가슴까지 내려오기까지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역시 제일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인 것 같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