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이해
줌바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바야흐로 2019년.
금요일 퇴근 후 우연히 회사 동호회실 앞을 지나가는데
화려한 사이키 조명과 익숙한 살사 음악이 들렸다.
사내 살사 동호회인가 싶어 유리창으로 힐긋 보는데 다들 운동화에 운동복 차림이었다. 에어로빅일까, 정체가 뭘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줌바였다.
TV에서 연예인 최여진이 줌바가 분당 칼로리 소모량이 아주 높은 운동이라며 추천하는 것을 보아왔기에 관심이 있었는데 사내 동호회가 있다니. 타임 푸어인 내게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렇게 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줌바동호회의 열기는 대단했다.
수업 중간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3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춤을 췄기에 한증막과 같은 뜨거운 기운이 훅 느껴졌다. 한 곡이 끝나고 나서 바닥에 떨어진 땀을 바로 닦지 않으면 미끄러워 넘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여긴 광신도 집단인가, 단체로 마약을 했나 싶을 정도였다. 강사 선생님도 흥에 겨워 스피커를 잡고 헤드뱅잉을 했고 회원들끼리도 하이파이브는 기본이었다. 열성 회원 중에는 줌바 인스트럭터 자격증을 딴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런 과한 텐션과 열정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아이 하원 시간을 맞춰야 했기에 수업 시작 후 살금살금 들어가 수업 끝나기 전 몰래 빠져나왔다. 그렇게 해도 회원이 많았기에 나의 존재가 그렇게 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2020년 전 세계에 닥친 코로나.
동호회실은 기약 없이 문을 닫았지만
강사 선생님은 시간을 정해 줌으로 온라인 수업을 이어나갔고 온라인 홈트 플랫폼으로도 진출했다.
회원들도 각자 공원이나 베란다에서 챌린지 영상을 찍어 공유하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홈트를 하기도 했다.
코로나도 회원들과 강사 선생님의 열정을 꺾지는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3년 만에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동호회 수업이 재개되었고, 나는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난 작년 9월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어떤 수업 방식이었는지 기억이 가물하고)
지금의 수업방식은 회원들에게 굉장히 유리한 형태이다.
월요일~목요일까지 매일 저녁 2시간씩 수업이 있고
월수/화목 중 한 타임을 선택하지만 혹시 정해진 타임에 못 가게 되면 주 8회 수업 중 아무 시간이나 참석할 수 있었다. 일반 회원은 자율적으로 월 8회를 채울 수 있고, 일반 회원에서 만 원만 더 내면 무제한으로 수강이 가능했다. 내가 하는 다른 운동으로 기구 필라테스가 있는데 철저한 예약제에 당일 안 나오면 노소로 인한 횟수 차감이 된다. 그 형태에 비하면 줌바수업은 그야말로 혜자였고, 회원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싶었다.
어색하고 쑥스러운 마음으로 4년 만에 첫 수업을 갈 때는 아는 얼굴이 얼마나 있을까, 예전의 열성 회원들은 그대로일까 궁금했다. 강사 선생님이 설마 나를 기억하실까 싶었지만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예전 그 부담스러운 텐션을 각오(?) 하고 갔는데 그 사이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호피 무늬 레깅스로 줌바 고인 물임을 드러내던 열성 멤버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익숙한 얼굴도 없었다. 그리고 사람 수가 현저하게 적었다. 내가 참여하는 타임에는 3명, 많으면 6~7명 정도였다. 사람이 적으니 수업 분위기도 조용, 차분해졌다. 늘 신규 회원이 있지만 한 번 왔다 사라지는지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 수는 늘어나지 않았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야 기본적으로 텐션과 흥이 없고 잔잔한 유형이라 사람이 많던 적던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는데 가끔씩은 강사 선생님이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힘들어 보였다. 파워 E는 I보다 항상 강한 줄 알았는데 다수 I의 무반응에 무너지기도 하는구나 처음 알게 되었다.
나처럼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지 사실 잘 보인다. 이유와 배경은 잘 모르지만 예전의 텐션 좋던 열성 회원은 떠나고 없고 지금의 회원은 무반응에 호응 적은 일명 시체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회사 사람들의 95% 이상의 성향이 그러하니 그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은 사람들로 수업을 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면 수업을 줄이면 된다. 많은 커뮤니티와 사설학원이 적정 수강 인원 미달 시 폐강 조치를 하니까.
하지만 이 또한 말처럼 쉽지 않음을 잘 안다. 한때 나의 애정과 열정, 청춘과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대상인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진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속상하고 답답하고 안타까움을 넘어서 때론 화가 나기도 한다는 것을.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곱씹어 보고, 그때 이렇게 해볼걸, 이렇게 하지 말걸 후회가 밀려오고. 그 모든 것이 내가 부족한 탓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무력감에 한없이 우울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지금으로부터 10년쯤 더 지나면 예전엔 그랬었지, 그때가 위기였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한없이 고통스럽다는 것도.
이것은 내가 열정을 쏟은 대상을 곧 나와 동일시해서 그런 게 아닐까. 사랑으로 키운 내 자식이 내 뜻대로 안 되면 속상한 것이 자식을 곧 나와 동일시하니까, 내 뜻대로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 속상한 것이다. 그 대상이 자식이든 연인이든 커리어든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대상이면 동일한 것 같다. 그 대상과 나를 조금은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 역시도 2,30대 아니 40대 초반까지도 그런 과정을 거쳐 왔다. 지금의 내 나이가 되면 애착을 쏟은 대상과 나의 분리가 되는 것뿐 아니라 기력이 달려서 더 이상 화가 날 체력도 없어지게 된다. 화가 나고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건 아직 젊고 열정이 넘치는 증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말할 계기도 없고, 그런 이야기를 할 사이도 아니고 왠지 꼰대의 오지랖인 것 같아 나의 생각만 정리해 보았다. 나 같은 샤이 회원 중에도 표현은 안 하지만 무한 응원을 보내는 사람도 있으니 잘 이겨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