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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기획가 Nov 11. 2021

꿈을 위한 일 vs 생계를 위한 일

직장의 이해


학창 시절 나의 꿈은 작가였다. 글을 쓰는 행위는 나에게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주었기에 글을 쓰면서 돈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늘 상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아 국문학을 선택하는 것을 반대하셨다. 작가는 늘 가난하고 배고프다는 그 논리에 설득당한 것이다. 여자도 전문직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이공계를 선택했고, 수능 점수에 맞춰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당시 한참 성장하는 산업인 모바일 업계에 취업하게 되었다. 남들이 보면 순탄한 길을 걸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늘 불만족 상태였다. 나는 내 꿈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에서 둘째로 자라났기에 나는 항상 실패 없는, 재도전도 없는 딱 한 번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강요받았다. 직장인이 되자마자 한 집안의 가장이 된 나는 꿈보다는 돈벌이 때문에 현실을 박차고 나가지 못하는 나 자신을 비참하게 느낀 적이 많았다. 이 자리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곳이고, 내 적성과 꿈은 저 멀리 따로 있는데 현실과 도저히 조율할 수 없는 반대편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련의 여주인공이 그러하듯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기신 빚, 끝이 보이지 않는 엄마의 병원비 등등 어깨에 가득한 짐을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현재의 일이었으므로, 마냥 꿈을 좇아 현실을 박차고 나갈 수 없었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았던 것처럼 나 역시 월급에 청춘과 영혼을 팔았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2000년대 중반은 잘 나가던 직장은 과감하게 ‘때려치우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일을 찾아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유명 아나운서가 그런 선택을 했고, 함께 입사했던 동기들도 입사 3년 차에 현재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수능을 다시 본다며, 대학원에 진학한다며, 유학을 간다며 퇴사를 많이 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꿈이 아닌 생계 때문에 현실에 머물러야 하는 내가 더욱 비참하게 느껴졌다.


현실 때문에 꿈을 버려야 했던 비련의 여주인공 코스프레는 36살부터 슬슬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때 내 일생일대의 꿈이었던 책을 드디어 써낸 것이다. 꿈을 이루었을 때 그 보람과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인세가 처음 입금되었을 때의 느낌을 떠올려보면 내겐 너무나 소중하고 값어치 있는 돈이어서 누가 얼마냐고 물어보면 화가 날 정도였다. 감히 나의 소중한 꿈의 결과를 통속적인 돈으로 환산하려 하다니…….


source : pixabay


하지만 나 역시도 다른 작가가 선인세를 얼마 받았다더라 이런 기사에 눈이 번쩍 떠지는 속물근성이 있음을 고백한다. 매번 신기록을 기록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선인세는 과연 몇 억을 찍을지 여전히 궁금하다.

(국내 출판사에서 해변의 카프카에 6억, IQ84의 경우 10억이 넘는 선인세를 줬다고 하는 루머가 있었다.)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이 아닐까. ‘재미있는 일,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싶다.’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인데, 아이러니한 것은 대부분 하고 싶은 일은 돈이 안 되는 일이다. 꿈이 밥을 먹여준다면 생계까지 책임져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꿈과 현실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토털 이클립스는 흔하지 않다. 하루키 역시 한 편의 소설은 누구나 쓸 수 있으나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루키와 같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도 소설가로 먹고 살기 어렵다고 하는데 나 같은 소시민이야 오죽하겠는가.


비련의 여주인공 코스프레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책을 내면서 꿈을 이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내는 콘텐츠 기반이 바로 회사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스스로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너는 돈의 노예인 거냐,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왜 계속 지금 자리에서 머무르느냐. 그런 내면의 목소리 때문에 괴로웠다.

이제는 아니다. 매일 출근하는 그곳이 내가 책에 담을 수 있는 생생한 사례를 발굴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자 오히려 즐거워졌다. 나를 먹여 살리며 꿈까지 이룰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대한민국 최고의 강사로 손꼽히는 김미경 강사는 먹고살려고 하는 일, 즉 ‘생계’를 ‘생명의 꿈’이라고 부른다. 내 생명 먹여 살리는 일, 이것보다 더 중요하고 위대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에 누가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있을까. 생계에 대한 고민은 또 다른 고수 바둑기사 조훈현의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노동은 신성하다. 내가 바둑으로 노동하듯이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직업으로 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만약 나처럼 내 직업에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애착과 자부심은 굳이 없어도 된다.

직업 자체가 평생의 꿈일 수도 있고 자아실현의 방법일 수도 있지만, 직업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다름 아닌 생계다. 먹고살기 위해 누구나 가져야 하는 것이 직업이다. 어떤 직업을 가졌던 그것만으로 충분히 신성하다.

많은 사람들은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달라서 힘들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에게 그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면 당장 어떻게 먹고살지 막막해서 못하겠다고 한다. 이처럼 꿈과 현실 사이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더 중요한 건 먹고사는 것이다. 먼저 먹고사는 길부터 뚫어야 한다. 5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먹고살 수 있는 일부터 만든 후, 그다음에 꿈을 꿔야 한다. 생계가 막히면 꿈이고 뭐고 없다. 치사하고 초라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그게 현실이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도 다 그렇게 생계를 위해 초라하고 치사하게 살면서 우리를 키워내셨다.

돈은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피나게 노력해서 정상에 올라섰을 때, 그 대가가 보잘것없다면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이런 고민은 나 같은 소시민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넘어 할리우드 스타도 똑같이 한다. 『트와일라잇』의 히어로 로버트 패틴슨 역시 자신의 꿈보다 대중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된다면 좀 덜 억울하지 않을까.


로버트 패틴슨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이나 『더 배트맨』 출연을 확정했을 때, 영화 팬들은 인디 영화에 집중하던 그 답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가 갑자기 상업 영화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패틴슨은 지난해 초 자신의 경력이 ‘벽에 부딪히는’ 걸 경험했다. 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에이전트는 네가 리스트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영화계 사람들은 패틴슨이 더 이상 상업 영화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 패틴슨은 자신이 보험처럼 의지할 만한 게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내 작품을 아무도 안 본다는 게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업계 사람들 중 누구도 상업성이 없는 사람을 지원해주지 않으니까요.” 다행히 그가 생각을 바꾼 즈음 그의 연기를 본 놀란이 『테넷』 출연을 제안했고, 『테넷』 촬영 첫날 『더 배트맨』에 캐스팅됐다.


결국 꿈과 생계의 접점을 찾는 것은 모두가 하는 평생의 고민이다. 부디 행복한 교집합을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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