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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기획가 Mar 14. 2022

남편어와 회사어의 공통점을 발견하다

맞벌이의 이해

스페인 철학자 오르테는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사랑은 정상적인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주목 상태"라고. 즉 연애 당시에는 비정상적으로 나에게 집중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모습상대방의 전부인양 오해하고 결혼을 결정하면 안 된다는 의미심장한 뜻을 포함하고 있다.

 

연애할 때만 해도 내 말에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주고 대화가 잘 되던 남자는 혼 후에는 어디로 가버렸는가. 제 아무리 금성 여자 화성남자 책을 읽었어도 막상 현실에 맞닥뜨리니 이 남자의 하는 말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을 지지고 볶고 싸우며 얻은 결론이 있다. '아, 남편에게 하는 말(남편어)과 회사에서 쓰는 말(회사어)는 닮았구나' 하는 것이다.


워킹맘 초년 시절은 신혼 초보다 더 치열하게 싸운다. 전보다 더 늘어난 집안일, 어린이집이든 시터든 양가 할머니든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육아시스템, 퇴근 후 케어해야 하는 어린아이 등. 출산 후 한 사람의 체력은 더 나빠졌는데 역할과 업무는 2배 3배 늘어난다. 그렇기에 작은 일에도 "너만 일하냐? 나도 일한다. 그런데 집안일은 내가 더 해야 하냐? 얘는 나 혼자 키우냐"  동일한  레퍼토리가 줄줄줄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이런 식의 신세한탄 대화는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할 뿐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남편들은 이 말속에 숨겨진 '나 힘드니까 도와줘. 나 괜찮냐고 물어봐줘'의 의미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너 왜 이렇게 무능력해?'라고 받아들인다.

  

물론 남편들 중에는 말 꺼내기 전에 집안일도 알아서 잘하고, 아이와도 잘 놀아주고, 와이프 배려해서 "오랜만에 회사 나가서 일하느라 힘들지?" 이런 예쁜 말을 할 줄 아는 남자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남자들은 열에 한 두 명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남편들이 알아듣는 언어로 말하고 대책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지인들보다 늦게 결혼하고 출산은 더 늦었기에 지인들의 경험을 보고 배운 것이 많았다. (어차피 이 시대 워킹맘들은 라이프스타일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엄마를 통해서 삶의 조언을 얻거나 지혜를 배울 수가 없다.) 선배 워킹맘들이 알려준 노하우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집안일이 힘들다, 육아가 힘들다 이런 말은 남편들에게는 일종의 징징거림으로만 다가올 뿐이다.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해봐야 여전히 뭐가 힘든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엑셀로 정확하게 업무 분장을 할 필요가 있다. 정확한 데이터로 보여줘야 말에 힘이 실린다. 아이 등 하원 시키기, 쓰레기 버리기, 주 0회 빨래하기 등 구체적으로 나열해야 한다.   


둘째, (코로나로 인해 다행스러운 것 중 하나가 갑작스러운 회식이나 출장이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갑자기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서 예전에는 이렇게 대화가 이어졌다.

"나 오늘 일이 많아서 늦을 것 같은데 일찍 올 수 있어?"

"나도 빨리 못 갈 것 같은데..."

(급발진, 버럭 하며)"이때껏 내가 매일 하원했잖아. 나도 일이 바쁠 때가 있는데 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되면 다음 대화가 어떻게 이어질지는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이제는 숨 한번 고르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럼 내가 6시에 어린이집에서 하원해서 집에 데려다 놓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자기가 6시 30분까지 집으로 와줘. 나는 다시 회사로 가서 일 마무리할게. 그렇게는 할 수 있지? 물론 부장님한테는 잠깐 집에 다녀와서 일 마무리해도 괜찮을지 말씀드려봐야 해."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다 보니 예전에 받았던 회사에서의 보고 관련 교육이 떠올랐다. 상사가 어떤 일을 지시했는데 예상치 못한 이슈가 발생하여 밤을 새웠지만 기한 내에 끝내지 못했을 때 어떤 식으로 보고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쁜 보고 방식은  다음과 같다.

"제가 일을 다 끝내려고 밤샘을 했는데요, 처음부터 밤샘할 생각은 없었는데 저녁 9시쯤 갑자기 서버가 다운되어서 시스템에 접속을 할 수가 없었고...(블라블라)"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모든 상황을 이야기하면 상사는 "아 그래서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일을 다 끝냈다는 거야 못했다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사가 궁금한 건  마나 고생했고 힘들게 일했는지가 아니다. 일이 제대로 됐는지 여부와 안됐으면 무엇이 언제까지 필요한지 정보이다.

"지난밤 서버 문제로 일을 다 끝내지 못했습니다. 전산팀 통해서 서버 복구된 것을 확인했고, 금일 5시까지 마무리하겠습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직장생활이 제일 어려운 줄 알았다. 하지만 결혼생활과 육아를 겪어보니 고부관계나 남편과의 관계도 직장상사, 회사 동료 대하듯 하면 크게 어긋나지 않더라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다.  남편들에게 말하는 방식은 역시 직장상사에게 말하는 방식과 많이 다르지 않다. 부부 사이 (공감과 위로는 다음 생으로 넘기고) 소통이라도 잘 되면 보통 이상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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