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기획가 May 17. 2022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없다

직장의 이해

사람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는 너무 좋은 사람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닌 경우,  또 나에게는 최악의 인연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사람이 존재한다.


작년에 만났던 아이 담임 선생님. 초등 1학년 부모라면 아이의 첫 사회생활이기에 누구에게나 긴장되지만 나는 더욱 그러했다. 아이는 또래보다 늘 발달이 느렸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어려워했기 때문에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4살 때부터 나에게 초등 입학할 때는 반드시 휴직을 하라고 권하셨다. 또래보다 늦을 뿐 제 속도대로 성장하겠지 싶었지만 입학 직전 2월에 등록한 사설 학원에서는 한두 번 수업해보고 가르치기 힘들다며 수업료를 환불해주었다. 한 선생님은 본인도 본인의 아이도 ADHD인데 우리 아이도 딱 같은 모습이라며 병원을 가보라고 말씀 주셨다.


우리 아이가 보통 아이와 다르다는 현실을 그제야 깨달았고, 부랴부랴 내가 아는 병원에 다 전화를 걸었다. 동네 병원은 대기가 3개월, 대학병원 급은 1년~3년이었다. 진작에 알아볼걸 후회를 했지만 이미 입학이 코 앞이고 그저 좋은 담임선생님을 만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3월 입학을 맞이하자 학교생활은 그야말로 내 예상의 범위를 벗어난 카오스, 대혼돈의 멀티버스였다. 급식을 먹는 첫날 급식실에서 교실로 가는 그 사이에 혼자 길을 잃어버려 선생님이 20분 동안 아이를 찾으러 다니셨다. 수업 도중에 아이는 교실 바닥에 드러눕고 선생님한테도 "내가 너 때문에 힘들잖아~"라며 반말로 소리치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아이를 타박하지 않으셨다. 아이가 반말로 소리를 질러도 "어머, 00님은 선생님이 친구로 보이나 봐요. 그렇게 어리게 봐줘서 고마워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셨고, 아이가 해낸 작은 성취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칭찬과 격려를 해주셨다. 칭찬을 해주실 때도 "00님은 훌륭한 부모님에게서 태어났어요. 00님도 엄마처럼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어요."라며 말씀해주셔서 왈칵 눈물이  나올 뻔하기도 했다.      


선생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아이에 대한 모든 정보를 오픈했고 작은 일도 함께 의논드렸다. 선생님이 아이에 대해 보여주시는 애정과 사랑에 너무 감사했는데  아이도 선생님을 좋아해서 화장실까지 졸졸 따라가기도 했다. 한 달 한 달 지나갈수록 아이는 점차 학교 생활에 적응해갔고 나 역시도 걱정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었다. 좋은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던 나의 기도가 통했나 보다, 앞으로 학교생활하는 동안 이보다 더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까, 나의 모든 운을 초 1 담임에 몰빵했나보다  생각할 정도였다.


작년에는 같은 반에 친한 친구도 아는 엄마도 없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너무 좋으신 선생님이었기에 딱히 다른 사람의 의견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1학년이 끝나갈 때쯤 다른 반 반장 엄마를 통해서 우리 반의 여론을 알게 되었는데 선생님에 대한 불만이 많다는 것이다. 정기 상담 기간이 되어 전화상담을 할 때면 아이에 대해 전혀 파악을 못하시고 다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아이에 대한 지적사항이 있을 경우 부모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 내용을 반 단톡방에 올려 공론화하는 등 아이들에 대해 무심하고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이렇게 상반된 평가가 있을까 싶어 놀라웠다.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내 아이와 같이 유난히 관심이 필요한 아이, 누가 봐도 반듯하고 모범생 같은 아이에게 집중을 하고, 사고 안치고 학습도 어느 정도 따라가는 보통의 아이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한 반에 30명, 한 학년에 13반이라는 초과밀 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과 집중이 아닐까 싶었다.    


나에겐 호인이었으나 타인에겐 악연인 경우, 그 반대의 경우는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 내가 만난 직장 상사 중에서 최악의 상사였던 A 부장. 해외출장 보내준다며 생색내며 큰소리치더니 비행기 발권 직전에 출장자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버리는 등 상황에 따라 말 바꾸기며 심한 남녀차별로 무척 힘든 대리 시절을 보냈다. 밤마다 눈물 흘리고 사표를 가슴에 품었지만 A 부장 때문에 그만두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 그 인간 회사 나가는 거 보고 그다음 날 그만두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내 안에 오기와 악을 불러일으켰던 사람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또 좋은 상사였다.  리 부서에서 A 부장이 보내준 어학연수며 MBA 연수 혜택을 받은 사람이 3명이나 되었다. 나와 같이 평범한 부서원들에게도 돌아갈 기회를 확실하게 키우는 2~3명에게 몰빵한 것이다. 또한 부하직원의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아이 입학/졸업과 같은 행사로 휴가 쓰는 것은 인상 구기면서 본인은 가족의 각종 기념일 다 챙기고 업무시간에도 아이가 전화하면 피자배달을 직접 시켜주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나의 사회초년생 시절을 이야기해보자면, 사원 3년 차에 외주업체를 끼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뿌리 속 깊은 유교 걸이었던 나는 나보다 연장자인 업체의 팀장과 컨택포인트를 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업체의 소소한 실수는 "수정해서 보내주시고 앞으로 조심해주세요." 정도의 피드백으로 끝났다. 하지만 같은 업무를 했던  사수 선배는 업체를 다룰 때 옆에서 봐도 엄청 무서웠다. 실수가 발생하면 "이것 때문에 전체 일정에 딜레이 생기면 책임지실 거예요? 이런 식이면 다음 계약 연장은 힘니다."라고  다그치는 데 옆에서 듣는 내가 심장이 움찔움찔할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 업체 담당자와 친해졌을 때 업체에서 나를 부르는 별명을 알려주었다. 나는 '천사'였고 사수 선배는 '마녀'라고 했다. 재미난 사실은 부서 내에서 상사의 평가는 반대였는데, 나는 보통이었고 사수 선배는 에이스였던 것이다.  


이런저런 사례를 보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없다. 사람을 판단하고 바라보는 입장은 언제나 상대적이며 누구에게는 호인이 다른 누구에게는 악인이 되기도 한다. 보통의 인간관계에서도 그러한데 직장 내 인간관계라고 다를 바 없다. 위로 올라갈수록 서운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더 생길 것이다. 그러니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상처 주지 않으려는 노력,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헛된 노력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직장 내 인간관계보다 동네 언니가 더 어려운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