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다는 것
직장생활의 이해
그것을 자존심이라 부를지는 모르겠다. 예전에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약한 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나를 도와주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불쌍하게 보는 시선, 나를 동정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까이 지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람 외엔 굳이 나의 곤란한 사정을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나의 어려움은 상사에게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적극 상담하는 것으로 태도가 바뀌었다. 이렇게 태도가 바뀐 데에는 2가지 큰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계기, 나보다 어린 남자 동료의 죽음.
지금은 워라밸이 많이 좋아져 저녁이 있는 삶이 되었지만, 입사초부터 10여 년 전만 해도 저녁 식사를 가족과 하는 날은 1년 중에 몇 번 되지 않았다. 회사 식당에서 팀원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7시부터 시작해서 두 시간 바짝 일하는 게 일반적이었고 11시 반을 넘기는 것도 특이하지 않을 때였다. 특히 집이 먼 선배들은 애매하게 10시쯤 퇴근하여 버스에서 시달리느니 어차피 도착시간은 같으니까 사무실에서 12시 딱 찍고 편안하게 택시 타고 가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렇게 다 같이 몸을 갈아내면서 일하는 분위기일 때 회사 부고란에 소식이 떴다. 나보다 늦게 입사한 남자 후배였다. 다른 부서 사람이기에 나는 직접적으로 알지 못했지만 장례식에 다녀온 동료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아직 30대 중반도 되지 않은 젊은 과장이고, 복중 태아가 이제 8개월이라고 했다. 문상을 갔는데 고인의 부모님과 아내가 울다가 혼절하기도 했다고, 벌써 몇 달을 야근과 철야를 했고, 휴가나 병가를 쓰려고 했지만 반려당했다고 했다. 그렇게 몇 날을 밤샘하고 집으로 돌아와 잠들었고 영영 깨어나지 못한 것이다. 사인은 명백한 과로사이지만 회사 안이나 출퇴근 버스가 아닌 집에서 사망을 했기에 산재처리도 되지 않는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세상을 떠난 사람도 안타깝지만 홀로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하는 그 와이프는 무슨 날벼락 일지... 인생의 황망함에 나도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죽을 만큼 힘들었으면 그전에 힘들어 죽겠다고 징징거려도 보고, 사표도 내보고, 정신과 진료도 받아보고 그럴 것이지 왜 그렇게 묵묵하게 참고 이겨내려고 했나...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한 사람의 희생으로 예전에는 무척 절차가 까다로웠던 휴직이나 병가의 절차가 다소 간편해졌다.
두 번째 계기, 알리지 않은 임신 소식
대학 동기 중에 같은 회사에 입사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결혼 후 첫째 임신을 하고 출산, 복직하여 회사를 다니다가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워낙 건강 체질이었고 첫째도 순산했기 때문에 둘째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바로 부서장에게 알릴지 4~5개월쯤 되어 배가 불러올 때 알릴지 고민을 했다. 왜냐하면 임신 사실을 회사에 고지하면 그때부터 모성보호 등록이 되어 저녁 7시 이후 야근을 못하도록 규제를 받기 때문이었다. 당시 월 야근비가 30만 원 정도였기에 늘 받던 야근비를 6개월 이상 못 받으니 아쉽게 생각했다. 친구의 임신 소식을 듣고 서 내가 빨리 부서장에게 알리라고 말을 해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평소대로 야근을 계속했다. 자신의 건강을 너무 자신했던 탓일까. 결국 아이는 3개월이 되었을 즈음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다.
우리 회사는 유산/사산 휴가의 경우 5일의 휴가가 지급된다. 친구는 별생각 없이 사산 휴가를 신청했는데, 문제는 모성보호를 등록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사산 휴가를 신청한 것이었다. 인사과에서는 친구의 부서장을 호출하여 면담을 진행했는데 부서원 중에 임산부가 있었음에도 몰랐다는 점, 임산부에게 야근을 시킨 점으로 경고를 주었다. 인사에서는 리더로서 팀원 관리, 조직관리를 제대로 안 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 사태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맘에 안 드는 상사가 있을 때 빅엿을 먹이고 싶으면 모성보호 신고를 늦게 하고 야근하면 되는구나, 둘째 나를 위하는 것뿐 아니라 상사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임신 사실은 빨리 알려야 하는구나.
주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이 있었기에 나와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은 면담을 신청해서 상사와 항상 공유했다. 시험관 시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갑작스러운 유산, 처음 시행되는 휴직 사용하는 1호 케이스, 느린 아이로 인해 발달센터를 다녀야 하는 상황, ADHD 아이의 초등 입학 적응을 위해 결정한 육아휴직, 자기 계발 휴직까지.
다행히 내가 만난 상사들은 좋은 분이셔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제도는 발 벗고 나서서 알아봐 주셨고, 업무는 걱정하지 말고 나의 건강과 아이를 먼저 생각하라고 하셨다. 이런 내 상황에 대해 대충 모르는 사람은 회사 대충 다니는 거 아니냐, 휴직 걸어놓고 여행 다니는 거 아니냐 험담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지만 나의 상사는 그렇게 꼬아서 생각하는 분이 단 한분도 안 계셨다. 10여 년 동안 이렇게 퐁당퐁당 휴직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포기하지 않고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상사의 역할도 컸다.
혹시 나의 사정을 상사에게 이야기하기 꺼려진다면 그리고 그것이 자존심이나 남이 나를 불쌍하게 볼까 봐 그 시선이 불편해서라면 다시 생각해보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마음의 불편함보다 당신이 얻게 될 기회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뒷담화하는 사람은 분명 존재하지만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시시콜콜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남자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쉽게 자기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저 외벌이라 대출도 많고 아이 기저귀 값과 분유값, 학비도 벌어야 한다며... 오히려 상사에게 기회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어필하거나 마케팅 도구로 소구 시키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러니 단순히 치부를 드러낸다고 생각하지 말고 좀 더 당당하게 면담하고 말해보자. 당신의 고민과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