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시절, 주변에서 동네 언니들/동네 엄마들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지인을 보면 공감이 되지 않았다. 나의 고과와 월급, 직장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직장 내 인간관계가 더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했지 사사로운(?) 인간관계가 무슨 스트레스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워킹맘과 전업맘 사이 휴직 맘으로 있으면서 초등 육아를 해보니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물론 아이를 매개로 시작했지만 가족끼리도 모두 친해져서 여행도 함께 다니고 누군가 아플 때 품앗이 육아도 해주는 그런 이상적인 관계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보다 계륵과 같은 인간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받는 경우를 더 많이 보았다. 존재를 알게 되면 완전히 신경 끄기도 어려운 브런치 모임, 한 번 다녀오면 완전 기 빨리는 엄마들 모임. 아이를 위해 영혼까지 탈탈 털었지만 뭔가 남는 것 없는 듯한 허무함. 그리하여 전격 분석해보았다. 직장 내 인간관 계보다 더 어려운 엄마들 관계!! 무엇이 원인이고 어떻게 처신하는 게 좋은가. (순수한 제 사견입니다)
사람이 모이면 그중에는 돌I도 꼭 한 명씩 있다. 돌I 질량 보존의 법칙은 직장뿐 아니라 엄마들 사이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회사에서는 그래도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다. 직속 상사가 나를 힘들게 하면 더 높은 상사와 면담해서 부서를 옮기거나 인사과에 신고하여 그 상사가 교육을 받도록 할 수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해도 몇 년 지나면 조직개편으로 자연스럽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 있다.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휴직을 하거나 이직, 퇴직을 하는 경우 그 사람을 더 이상 보지 않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엄마들 관계에는 중재해줄 수 있는 완충장치가 없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건 본인의 몫이기에 엄마들 사이에서 불편함이 생기면 그 감정적 앙금이 꽤 오래간다. 누구한테 털어놓았다 한들 비밀 보장이 안되고 소문이 떠돌다 나에게 되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또 하나의 힘든 점은 인간관계를 사생활과 분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상사나 동료가 아무리 나를 힘들게 해도 퇴근하면 끝이다. 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부딪힌다 하더라도 퇴근 후에는 신경을 끌 수가 있다. 하지만 엄마들 관계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맺고 끊는 게 쉽지 않다. 나는 먼발치에서 그 사람을 피해 가더라도 내 아이는 그 사람의 아이와 또 부딪히게 된다. 일상생활 반경이 겹치기 때문에 피하기도 쉽지 않고 계속 마주쳐야 한다. 누군가 전학이나 이사를 가야 정리가 되는 사이이다.
가장 힘든 주요 원인은 내 아이가 중간에 끼여 있는 것이다. 엄마들 관계는 아이와 항상 엮여 있다. 사이가 틀어진 그 엄마가 내 아이에 대한 험담을 한다거나 소원해진 관계가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봐 엄마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말투 하나에도 신경이 쓰인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사례를 살펴보면 엄마들 관계는 긍정적인 인간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보다 결국 험담에 편 가르기, 싸우고 스트레스받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엄마들 관계에서 하나가 틀어지고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면 해결은 쉽지 않다. 결국 미리 예방하는 것이 방법일 것이다. 그렇다면 예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 호형호제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엄마들 관계에서는 사회적 직급이 없다. 누군가 부를 때 호칭은 항상 00 맘, 00 엄마로 시작하다가 좀 친해지고 나서 나이를 오픈하게 된다. 그다음 수순은 "나이가 저보다 많으니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또는 "내가 언니니까 말 놓을게."
호칭이 이렇게 "언니"로 정리되고 말 트는 사이가 되면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되지만 동시에 문제 발생의 발단이 되기도 한다. 서로 존댓말을 쓰는 사이는 어느 정도 예의의 공간과 거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언니와 반말로 오가는 사이는 언제든지 사적 영역을 침범하고 상대를 손아래로 쉽게 대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된다. 이 첫 단계를 쉽게 넘기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가 "내가 언니니까 말 놓을게"라고 한다면 정색을 하며 "아.. 그러면 불편할 것 같은데요? 저는 서로 존댓말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선을 그어야 한다. 첫인상에 쉽게 범접하지 못하도록 벽을 세우면 그 뒤에 큰 문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왕따는 당할 수도 있다.)
둘째, 내 친구 따로 아이 친구 따로라는 마인드를 가진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어떡해서든 그룹에 끼이려고 하고 엄마들 모임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하지만 아이와 엄마 모두 합이 맞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엄마들은 친하지만 아이 성향이 서로 맞지 않아 아이가 억지로 어울려야 하는 경우, 아이들은 친하지만 엄마들은 데면데면한 경우 서로가 비극이다. 아이들끼리 친하지만 엄마들 성향이 맞지 않다면 차 한잔 마시는 사이로 충분하다. 엄마들끼리는 잘 맞지만 아이들이 서로 싫어한다면 그 인연을 굳이 아이들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내 친구 따로 아이 친구 따로라고 생각하면 정신적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다.
셋째, 인간관계 본질 자체가 종잇장같이 얇다는 것을 인정한다.
아이를 통해 알게 되는 엄마들 인간관계는 본질적으로 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엄마가 되면 아이에게 해가 되는 관계는 막는 것이 본능이고 모성이다. 문제는 나는 그 엄마를 진심으로 대했는데 그 엄마는 자기 아이에게 득이 되었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온 것이고, 더 이상 도움이 안 된다 생각하면 가차 없이 팽한 경우 상처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반대의 경우도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아이에게 득이 된다면 언제든 자기 입장을 뒤집을 수 있을 만큼 부질없고 종잇장같이 얇은 우정이다. 그 본질을 이해한다면 너무 상처받는 일도 적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