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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기획가 May 12. 2022

부모가 되어 다시 읽는 빨간 머리 앤

육아의 이해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나와 또래라면 이 빨간 머리 앤의 주제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본방사수를 위해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TV 앞으로 달려갔던 열몇 살 시절.

앤의 풍부한 상상력과 표현력이 사랑스러웠고 다이애나와의 우정을 흠모했으며 홍당무라고 놀리는 길버트를 처단하는 모습에 함께 통쾌해했다. 다락방에 대한 로망도 아마 이때쯤 생긴 것 같다.

그리고 앤이  커가면서 주근깨도 옅어지고 머리 색깔도 갈색으로 바뀌고 (중요한 포인트!)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희망을 가졌다.


대학시절, 나의 첫 배낭여행지는 캐나다였는데 캐나다 일주를 하는 동안 앤의 초록 지붕 집, 그린 게이블스가 있는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에 3일 동안 머물렀다.

이는 한 달 여행하면서 가장 길게 머무른 곳으로

뮤지컬도 보고 책도 읽고 연인의 길 산책, 작가 생가와 박물관 방문, 바닷가에서 물놀이 등 앤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체험한 듯했다.

이것이 10대, 20대 시절에 앤이 나에게 끼친 영향이었다.


최근 영어 원서 읽기 모임을 통해서 빨간 머리 앤을 다시 읽고 있다. 부모가 되어서 바라보는 앤은 학창 시절에 받았던 그 느낌과 너무 다르다. 부모가 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이

같은 사람에 대해서도 이렇게 다른 시선을 가지게 만드는가 스스로 놀라울 정도이다.


일단 앤은 말이 너무 많다.

감성적이고 예민하고 또 다혈질이고 그 모든 생각과 느낌을 쉴 새 없이 표현한다. 옆에서 앤이 육성으로 말하는 모습을 움짤이나 그림으로 그린다면 귀에서 피가 나오는 걸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내 딸이 앤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면?

사랑스럽기보다 기빨리고 피곤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특히 마릴라가 앤한테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Hold your tongue." (입 다물어. 잠자코 있어)

"I hope you'll try to control your temper now." (성질을 죽이려고 노력했으면 좋겠구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 역시 다르지 않았다.

"She's a real odd little thing." (진짜 특이한 아이예요)

"She has a qeer way of expressing herself." (자신을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죠)

"She had an awful temper." (ㅈㄹ같은 성질이에요)

"She talked all the time to herself or to the trees and flowers like a crazy girl." (ㅁㅊ것처럼 나무와 꽃에게 하루 종일 말을 건다니깐요)


이런저런 정황상 앤이 요즘에 태어났다면 역시 ADHD라는 진단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충동적이고 불완전했던 아이가 한 명의 교사로 성장해나가는 걸 보노라면 아이를 편견 없이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다.


어릴 땐 마릴라의 딱딱하고 엄한 모습, 매튜의 말없이 우직한 모습만 기억에 남았다. 이제는 원래 원했던 아이도 아닌데 아이를 파양 하지 않고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 낸 두 사람의 책임감이 눈에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며 어릴 때 따분하게 생각했던 어른의 고루한 시선을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된다.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고 전 세계 베스트셀러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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