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초보 부모로서 누구나 실수한 적이 있고 들이켜보면 아쉬운 순간이 있기 때문에 공감을 얻은 제목일 것이다.
나는 이 제목을 보고 내가 내 아이를 다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엄마인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키운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키우기 수월한 아이였다. 어떤 곳에서든 상황에서든 잘 적응했고 문제 일으킨 적이 없는 아이, 부모 입장에서 손이 많이 가지 않고 가만히 놔두어도 알아서 잘 크는 아이. 늘 또래보다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 알아서 잘한다는 것은 집안 형편과 엄마아빠가 싸웠는지 사이가 좋은지 늘 분위기를 살피고 아이로서 누려야 할 것을 알아서 포기했다는 의미이다.
키우기 수월한 아이는 떼쓰지 않는다. 부모한테 요구하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쓰레기통이나 재활용코너에서 주워오던 남한테 빌려서 해결하고 엄마 아빠가 돈 때문에 싸우면 장학금을 받아온다.
이런 아이는 어른이 해결해야 할 삶의 무게를 부모가 슬금슬금 떠넘겨도 거절할 줄 모르고 꾸역꾸역 다 해치운다. 돌아오는 것이 고작 '착하다', '듬직하다'라는 말 뿐이어도 그 칭찬을 보람으로 생각하고 묵묵히 희생한다.
이런 아이는 어린 시절 외롭다. 주변 또래들과는 공통 관심사가 없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데 도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나 혼자이고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없을 것 같은 고독감이 있다.
이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면 뒤늦게 억울함이 찾아온다. 다른 부모는 그렇지 않은데, 내 부모는 나한테 짐지운 거네. 나는 내 나이 때 누릴 수 있는 걸 하나도 못해봤네.
비록 지금은 어른이 되어 내가 원하는 것은 돈걱정 없이 살 수 있고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 불편함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이제는 괜찮다고 여겼던 지난 시절의 아픔이 떠오른다. 나를 힘들게 한 상황, 사람들보다 당시 힘들어해서 혼자 울던 내가 보인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혼자 해결하느라 얼마나 외롭고 막막했을지...
지금의 내가 어린 나를 다시 키운다면 부모에게 언제든지 의지할 수 있고 기댈 수 있다는 것을, 너 혼자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