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만 자라는 도시
"금방 비라도 내릴 듯. 가슴 한켠 몽글거리던 누군가의 체취. 걸어나온 길 끝에 간신히 걸려 있다."
블레이드러너와 같은 디스토피아 영화의 배경 도시들은 하나같이 잿빛 하늘, 추적거리는 비, 붉은 네온 사이로 복잡한 길, 공중으로 입체화된 보행로 등의 특징을 클리셰로 채용한다.
태국의 거리들이 딱 이런 느낌이다.
방콕의 시내 거리는 평면적이지 않고 수직적으로 층층이 중첩되어 있다. 고가도로, 스카이트레인 등의 고가 구조물이 유난히 많다.
방콕은 평균 해발 고도가 1.5미터에 불과하고, 동양의 베네치아라고 불릴 만큼 크고 작은 운하가 많다. 거대한 호수를 매립해 쌓아 올린 멕시코시티와 같이 연약 지반 위에 건설된 도시라서 지하철망을 구축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다.
운하들에 막힌 막다른 골목이 많고, 과거부터 이어진 대지주의 사유지가 도시 곳곳을 점유하고 있어서 신규 도로의 개설도 어렵다. 여기에 난개발이 되니 기존의 도로망으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의 교통 체증이 방콕의 숨통을 꽉 조여 왔다. 이 문제를 땅 속이 아닌 기존 도로의 하늘 위로 또 다른 통로들을 겹쳐 올려 해결해 온 것이다.
방콕의 빌딩들은 층수 구분이 특이하다.
1층을 G로, 2층을 M으로 표기한다. 3층에 이르러서야 1층이라는 숫자표기가 나타난다. M층이 메인층으로 쇼핑몰의 명품관이 배치되기도 하지만, G와 M은 근본적으로 침수의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높이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BTS 스카이트레인의 통로는 고가도로 중간에 설치된 스카이워크로 연결된다. 이 공중 보행로는 각종 건물들의 1층부터 3층으로 바로 연결된다. 대부분의 빌딩은 그 연결 통로에 건물의 메인 게이트를 화려하게 설치한다. 방콕의 높이는 결국 이 스카이워크가 기준이 되는 듯한 느낌이다.
시암과 수쿰빗의 스카이워크는 이 도시의 숨겨진 시그니처다. 스카이워크 위에서 바라보는 위와 아래의 풍경 차이는 드라마틱하다. 수평적으로 계층이 구분되는 서구의 도시들과 달리, 방콕은 수직적으로 계급과 계층이 구분되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디스토피아적 모티브를 제공하기에 이만큼 최적화되어 있는 도시가 없다.
그런데 이 도시는 실제로도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아직 자카르타만큼은 아니지만 해수면 상승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무분별한 도시 개발과 인구 집중으로 자카르타 같은 지반 침하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 국가의 수변 도시들이 위태롭다. 오션뷰, 리버뷰를 자랑하는 건물들의 50년 후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수십 년 후 미래의 위기는 잘 와닿지 않는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페르몬에 취해 끝없이 원을 돌다 집단 과로사하는 개미들의 앤트밀 현상이 떠오른다.
도시 집중과 고밀도 개발은 그 공간의 효율을 높이지만, 도시의 피로 골절도 유발할 수 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각자의 투자 지침은 잘 외우면서, 왜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를 한 바구니에 자꾸 밀어 넣을까?
#방콕 #도시에세이 #도시풍경 #여행에세이
#수직도시 #스카이워크 #디스토피아적풍경
#도시의구조 #공간의사유 #도시와인간
검색·확산용 #방콕여행 #방콕도시 #BTS스카이트레인
#방콕스카이워크 #동남아도시
#도시개발 #고밀도개발 #해수면상승
#지반침하 #도시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