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의 피크닉

소풍 같은 그들의 저녁

by Mong

"땅꺼미 내려앉은 거리 한켠,
가빴던 숨 가락들 발끝으로 흩어지더니
밤공기 실바람에 휘리릭."




야시장 한쪽에 벤치와 테이블들이 마련되어 있다.
시장에서 사들고 온 도시락들을 자리에 풀어놓는다.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 손에는 빠짐없이 희고 검은 비닐봉투들이 들려 있다.
한낮의 더운 열기가 한숨 식어내린 시장의 테이블은 어느새 근사한 피크닉 사이트가 되어버린다. 야외에서 군침 도는 도시락을 풀어놓고 나누어 먹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피크닉 같은 이 풍경이
그들에게는 소소하게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들의 저녁시간은 저 비닐봉다리 안에 담겨 있다.

태국 숙소에 가보면 주방 구조가 놀라울 정도로 단출하다. ‘집에서는 음식을 해 먹지 않겠다’는
일종의 다짐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들은 우리처럼 저녁거리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집 근처 야시장에는 그들이 좋아하는 모든 먹거리가 있고, 그저 그때 당기는 음식을 주문하면 된다. “낀 카우 녹 반(Kin Khao Nok Ban).”
태국에서 흔히 쓰이는 관용구로, ‘외식을 한다’는 뜻이다. 태국에서는 집밥보다 외식이 식생활의 주류다. 전통적으로 수상가옥과 공동체 생활을 바탕으로 집단 취식을 해왔고, 모계 중심 사회에서 여성들이 생산활동에 주로 참여해 집안일을 여성이 전담해야 할 이유도 크지 않았다.
근대에 이르러 중국계 이민으로 노상 음식점이 급증했고, 현대에 들어서는 급격한 도시화와 콘도 중심의 주거 형태가 확산되며 이제는 집에서 음식을 거의 해 먹지 않는 문화로까지 정착되었다.

이들에게 집밥은 일종의 사치재다. 낮은 인건비와 풍부한 식자재 덕분에 가성비 좋은 외식이 얼마든지 가능한데, 굳이 피곤한 몸으로 저녁을 만들고 그 뒤처리까지 감당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차라리 사 먹는 편이 더 저렴한 현상은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도 조금씩 보편화되고 있다. 시장 물가 상승, 맞벌이, 가사노동의 부담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이 흐름은 식재료 유통 구조에도 영향을 미쳐 도매가와 소매가의 격차를 키워왔다. 여기에 최저임금의 정체까지 겹치며 집밥의 가성비는 외식을 따라가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이는 북미나 유럽과는 사뭇 다르다. 인건비가 높은 이들 지역에서 외식은 여전히 사치재다. 프랜차이즈를 제외하면 평범한 가족 외식 한 끼에 수백 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반면 마트에서 구입하는 식재료 가격은 전반적으로 한국보다 저렴한 편이다. 그래서 이들 지역에서는 외식보다 포틀럭이나 바비큐 같은 홈파티 문화가 더 발달했다. 상반되는 외식문화를 가르는 요인은 하나로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조리와 설거지, 보관과 공간, 시간을 모두 포함한 ‘저녁 한 끼의 총비용’을 생각해보면, 태국에서 외식이 일상이 된 이유는 조금 또렷해진다. 낮은 최저임금은 이 구조를 가능하게 만든 여러 조건 중 하나일 것이다.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은 외식 가격을 밀어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태국의 가성비 높은 외식 환경 역시 소득 수준의 향상과 함께 점진적인 변화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국은, 서구와 동남아의 딱 중간 어디쯤일까. 집밥도 부담되는데, 그렇다고 외식이 마냥 저렴하게만 느껴지지도 않는다.


어찌됐건 지금의 태국은 적어도 여행자에게만큼은
마음껏 누려도 될 호사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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