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로 Dec 30. 2022

요리 못하는 사람의 레시피

그래도 먹는다

# 장면 1.

아들 위한 주먹밥

“엄마, 주먹밥 해줘”

“엄마, 서양식 요리해줘, 소시지, 베이컨, 프라이, 샐러드 만들어서 “

간편한 요리에 팔 걷어붙이고 슥슥해 주면, 아들이 만족해하면서 먹는다. 그런 아들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하니 간편하고 좋구먼!”이라고 외치니 돌아오는 답이 나를 훅 치고 간다.

“엄마가 요리를 못하니까 그런 거야”

이런 놈을 봤나! 그래도 인정!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협동조합 일을 한 지 10년. 그 10년 동안 아이 밥을 제대로 차려준 일이 몇 번 안 된다. 맘씨 고운 시어머니랑 같이 산 덕분에 아이밥과 육아는 온전히 어머니께 맡기고 나의 일을 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요리 실력이 늘어날 일이 별로 없다.


# 장면 2.

나를 위한 한 접시

“선주 씨는 어쩜 그렇게 요리를 잘해?”

이런 상반된 평가를 하는 사람들은 내가 한 요리를 먹어 본 이들이 아니다. 내가 페북에 주야장천 올리고 있는 음식 사진 보고 하는 말이다. 사진이 맛을 말해주지는 않는데, 음식이 가진 빛깔을 잘 조합해서 그 모습이 예뻐 사진을 올리면, 사람들은 맛까지 있다고 생각해 버리나 보다. 물론, 나는 내 요리의 맛을 좋아한다. 재료 그대로 살아 있는 맛. 빵, 치즈, 샐러드, 야채구이 등을 곁들여 먹는 간편한 브런치 스타일의 음식을 즐기고 있고, 그렇게 차려진 한 끼 식사 비주얼이 좋아서 찰칵하고 사진을 찍어 올린다. 게데가 빵을 구워 올리기도 했으니, 고수 중에 고수로 보시는 듯하다.


이렇게 내가 만든 어떤 음식 같은 것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 2년쯤 되는 것 같다. 10년 동안 열심히 일하면서 얻은 것이 술살. 탄수화물과 지방 위주의 식사. 건강을 찾기 위해 채소와 과일류의 음식을 찾기 시작하고, 그런 재료들로 차린 소박한 한 접시 음식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차린 나를 위한 한 접시 요리 사진을 페북 올려댔던 것이다. 내가 차린 음식이 맛있을 거라고 상상하는 분들에게 “맛있지 않아요, 그저 예쁠 뿐이죠 “라고 답하지만, 다들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분들에게 나는 이미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다.


# 장면 3.

직원들과 함께 하는 점심 - 내가 만든 요리


“이사님, 오늘 최고예요! 정말 맛있어요”

이 분들은 내가 만든 음식을 정말로 먹어 본 사람들의 평가다. 원미동 시장 골목에서  공동체 공간과 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우리 협동조합은 점심이면 열명 정도의 직원들이 모여서 같이 점심을 먹는다. 식대를 지급하고 알아서 사 먹는 것이 기본 룰이기는 하지만, 매번 밥 사 먹는 것도 일이다 보니, 사 먹느니 간단하게라도 해 먹자고 하는 나와 김광민 팀장이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한다. 시장이 근 처이니 후다닥 문 앞으로 나가면 채소, 고기, 생선 등을 쉽게 사가지고 올 수 있다. 그때그때 당기는 대로 요리를 해서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다.


시장에서 재료를 사서 요리해 먹으면 한 사람당 3,4천 원으로 밥을 해결할 수 있다. 저렴하게 먹을 수도 있고, 누군가가 밥을 해주는 것이 좋아서 함께 먹는 직원들이 만족해한다. 나는 일하는 도중에 식당으로 올라가서 짧은 시간 내에 간편하게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찾아서 해야 한다. 고기 팍팍 넣고 1시간 동안 팔팔 끓인 김치찌개가 인기가 좋다. 어묵에 고추장만 묻혀 구워 주어도 좋아하고, 두부 굽고 프라이만 해서 줘도 맛있다고 먹는 것 보면 분명 시장이 반찬이다. 가장 배고플 때 방금 한 음식. 무엇이라도 먹으면 든든하고 행복한 거다. 그렇게 시장인 반찬인 사람들과 간단히 해 먹을 수 있는 음식 위주로 만들어 먹으면 점심시간이 든든해진다. 나는 어느새 직원들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해주는 사람이 되어 있다.


# 장면 4.

아침 조회 간식 빵 반쪽

아침마다 8시 40분까지 재빠르게 움직여 사무실에 도착한다. 10분 만에 식빵을 토스트기에 구워 반쪽을 잘라 그 위에 내가 만든 간단 스프레드를 발라서 의료국 직원들에게 내어 주기 위해서다. 의료국 직원들은 환자 맞을 준비를 하다가 50분쯤 되어 회의실로 들어와 내가 차린 빵 한쪽과 원장이 내린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아침을 시작한다. 토스트라고 해봐야 거창하지 않다. 심지어 한쪽도 아니고 반쪽이다. 그 위에  계란스프레드, 감자스프레드, 혹은 그릭요구르트와 블루베리 등등을 올려준다. 의료국 식구들 뿐만 아니라 사무국 식구들까지 챙기니 모두 합쳐서 총 16명의 아침 반쪽 빵을 나누기 위해 분주하다. 적은 재료비로 여러 명이 나누어 먹는 그 순간이 나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4개의 장면을 모두 정리하여 말자면, 나는 요리를 못한다. 그저 필요에 의해서 음식 재료를 사고 무언가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한다. (아 그것이 내 주요 일은 아니다. 나는 서류더미에 파묻히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 조정 하느라 쓰는 시간이 더 많다!!) 그저 내가 어떤 재료들을 가지고 무언가를 아주 간단하게 만들면 시장이 반찬인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같이 밥을 먹는 사무국 식구들 카톡방 이름을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지었다. 예산은 절약하면서도 사람들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무엇일까를 매일 생각하는 내 고민이 담긴 이름이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자는 마음. 오병이어의 기적! 그런 내 마음이 담긴 화려하지 않지만 귀여운 음식들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