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로 Jan 02. 2023

가지 그대로의 가지

사랑스러운 텃밭 작물

“옥상에 텃밭을 만들어 보자”

우리 협동조합에는 셋 이상만 마음을 모으면 동아리 하나를 만들어 운영할 수가 있다. 합창반, 독서반, 근력운동반, 판소리반, 여자축구반, 마라톤반 등등.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고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가입해서 활동을 한다. 그중에 하나가 텃밭 모임이 있다. 우리가 임대해 있는 건물 옥상이 비어 있으니 텃밭을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조합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나는 조합원들의 그런 미션이 오면 그 숙제를 풀어내야 할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옥상에서 텃밭을 운영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원미동에 있지만, 2016년 당시에는 부천 신중동 부근 8층짜리 건물에 임대해 있었다. 건물 각 층마다 방마다 주인이 다르니, 텃밭을 운영해도 좋을지는 건물주가 아니라 건물의 관리자의 손에 달려 있었다. 입주자 대표들에게 말 한마디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마침 우리 건물 관리자 어르신과 나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마침 그분이 좋아하는 전 시의원이 나와 아는 사람이었고, 그 덕에 마치 서로를 예전부터 아는 사이었던것처럼 기뻐했다. 그 분은 건물에 광고문 하나 붙이려고 해도 프린트가 먹통일 때가 많아 곤란을 겪었다. 그런 분께 프린트를 해드리거나, 광고문 글자를 써서 드리며 친근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 덕에 옥상 텃밭 운영 허락 받기가 수월했다. 그렇게 우리의 옥상 텃밭이 시작됐다.


처음 텃밭 자리는 황량했다. 하필 완공되기 전의 건물에 둘러 싸여있어 더 어두웠다. 회색 빌딩 숲 사이에서 희망을 심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사람들의 모습이 연출이 됐다. 당시 건물 옥상에는 조그맣게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아무도 관리하는 사람이 없이 흉물스러웠다. 텃밭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땅을 써야 했고,  텃밭으로 만들기 위해 땅을 가꾸어야 했다. 옥상에 우리의 텃밭을 만들자고 하는 미션이 주어지니 여러 조합원이 모였다. 조합원 각자 자신의 본업이 있다보니, 각자 시간이 날 때 옥상으로 찾아와서 텃방을 가꾸는 데에 함께 협력했다. 마침, 마을 텃밭 만들기 지원을 받아 텃밭 상자도 몇 개 구할 수 있었다. 그럴듯한 텃밭이 금세 만들어졌다



당시만 해도 이 건물의 유일한 상근자가 나였지만, 옥상 한 번 올라가기가 수월하지가 않았다. 천근만근 많은 일을 제쳐 두고 옥상에 올라갈 여유가 없었다. 그저 조합원들이 남긴 사진과 글, 수확해 온 작물을 통해서만 옥상 텃밭이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흔한 텃밭 작물의 하나인 상추부터, 방울토마토, 고추부터 허브까지 두루두루 다양한 작물을 심었다. 텃밭 운영을 같이 하고 있는 조합원 저마다의 흥미와 개성에 따라 다양한 작물들을 재배하고 있었다. 때로는 그 작물들을 수확하여 방문하는 조합원들에게 싸게 팔거나, 조합원들끼리 함께 하는 밥상에 재료로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로 가지가 왔다.


조합원들과 함께 밥상 나눔을 하는 날이었고, 그날을 위해 나에게 가지를 주었다. 길쭉하고 매끈한 보랏빛의 가지가 아니었다. 모양도 동글동글 짧고, 색깔도 보라색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보라색 수채화 물감이 도화지에 번져 버린 듯이 색깔이 애매했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이 모양 그대로를 남길 수 있는 요리법은 없을까를 고민했다. 이 작은 가지의 모양 그대로 가지 요리를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가지의 맛보다는 가지의 모양 그대로를 표현하고 싶었다. 물론, 나는 요리를 잘할 줄 모른다. 가지의 특징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내가 가지를 있는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요리법을 구현해 보겠노라고 당당히 나섰다.


가지의 모양이 그대로 유지되려면 채를 썰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모양 그대로를 둘 수도 없다. 가지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반으로 가르는 것이었다. 모든 가지를 반으로 갈라서 프라이팬에 예쁘게 뉘었다. 기름을 두르고 살살 구웠다. 프라이팬 열을 받아 가지 모양이 수축되어 쪼그라들면서 실망했다. 아, 이게 아니었나? 원래 그대로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형태는 사라지고 있었다. 나의 기대는 허황된 것이었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가지의 있는 그대로의 귀여움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더 이상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익히고, 그 위에 간장 양념을 뿌려 살짝 더 익혔다. 그리고, 그 자체만으로는 가지의 위대한 귀여움이 드러나지를 않아서, 깻잎을 사용하기로 했다. 깻잎을 한 장 한 장 접시 주변으로 죽 둘러 장식한 후에 그 위에 구운 가지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접시에 올렸다.


맛은? 글쎄 맛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가지의 귀여움 그대로를 남기고 싶었던 나의 마음만 강렬하게 내게 남아 있다. 가지 그대로의 가지를 표현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음식 재료가 하나의 먹을거리가 아니라, 하나의 미술 재료로 보이기 시작한 것. 자연에서 만들어진 고운 색, 그리고 다양한 모양과 질감. 그런 것들을 활용해서 무언가를 만들고 사람들과 한상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는 것을.


아마도 저 요리는 별로 맛이 없었던 것 같은 기억이 든다. 가지의 질감을 잘 살리지 못해 뻣뻣하고 질겼던 것 같다. 모양이 조금 흐트러지더라도, 조금 더 구워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5년쯤 지난 뒤 나는 이제 가지구이를 제법 맛있게 한다. 우리 조합 점심식사 인기 메뉴 중 하나다. 하지만, 저 때만큼 가지를 사랑하며 요리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시장에서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가지는 그저 손쉽게 사는 식재료의 하나였다. 그때 그 가지와는 다른 것. 텃밭 작물의 가지는 그날의 가지 그대로의 사랑스러움을 간직하고 내게로 왔었고,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가지로 기억되고 있다! 가지 그대로의 가지로!

매거진의 이전글 요리 못하는 사람의 레시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