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이라는 보석
작년,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시절, 우리 역사 선생님은 유달리 차갑고 냉정하신 성격을 가지고 계셨다. 그분은 다른 어떤 선생님들보다 공부를 강조하셨는데, 그 선생님이 어느 날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셨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성공하려면 공부해야 돼. 근데 너희가 특별하지 않다는 건 진작에 알지 않았어? “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이런 식의 말이었을 것이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공부에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에 이런 말을 건네셨을 테다.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이 말은 내게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왜? 내가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온 것은, 나 자신의 특별함에 대한 믿음 때문이어서다.
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개성“이라는 이름의 보석이 숨어 있다고 믿는다. 크고 작은 보석들은 서로 다른 색을 띠며 아름답게 빛난다. 하지만 사회는 우리에게 보석의 빛을 가리도록 설득한다. 왜냐하면, 사회의 시선에서 보석의 빛남은 그 자체로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이타적“이라는 보석을 가진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했고, 남들의 행복을 목표 삼아 행동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신임했다. 거기서 끝나면 좋았겠지만, 사회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사람들은 그를 얕잡아보기 시작한다. 그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면서도, 막상 그에게 고맙다는 표시는 일절 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가 도움을 청할 때에는 온갖 핑계를 대며 회피하기 바빠한다. 그는 호구가 된 거다.
결과는 이렇다. 많은 이들이 손해를 보기 싫어, 자신의 보석을 깎아내기 시작한다. 깎아내면 깎아낼수록 보석의 빛은 점차 줄어들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난다. 개성은 현실주의와 이기주의로 대체된다.
성공하려면 남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명제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요즘, 보석이 빛을 잃는 시기가 너무나도 빨라진 것 같다. 요즘 내 또래 학생들 사이에서도 특별한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의 친구들은 그저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남들이 대부분 선망하는 진로와 학과를 원한다. 사실 당연한 것이다. 특별하려면, 보석의 빛을 잃지 않아야 되는데, 그러려면 사회의 압박에서 벗어나야 된다. 무리하게 공부하면서 압박 속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기는 참 쉽지 않다.
하지만 개성은 여전히 중요하다. 자신만의 개성이 있어야, 삶을 대하는 자기만의 시선이 생긴다. 이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계획해, 행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보석의 빛이 바랜 사람은 자신의 인생이 남들처럼 단조롭기를 원한다. 돈 잘 벌어서 고난 없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 여긴다. 그 해석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삶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삶이라 생각한다. 비록 돈이 부족하고 여러 고난이 있을지라도, 원하는 것을 할 때의 즐거움은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릴 만큼 소중하다.
이 글을 잃고 걱정할 수도 있다. 현실에 못 이겨 자신의 보석이 이미 산산조각 나버렸을 것이라는 걱정. 그러나,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보석은 깨지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말은, 깨진 보석이라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고하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하면 조각들이 다시 하나로 합쳐져 밝게 빛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 내 보석은 “낙관적“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잘 될 것이라는, 보석빛을 잃은 자의 말로는, 헛된 희망을 바탕으로 살아왔다. 당연히 그로 인한 사회적 손해도 있었다. 내 낙관적 사고에 큰 충격을 준, 실패들이다. 이런 실패들은 낙관적인 나에게는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우울한 모습의 나 자신을 마주하며, 보석을 조금씩 부수기 시작했다. 보다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그러나, 작년 말부터 내 생각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니 한때 산산조각이 났었던 아름다운 보석은 복구되었고, 다시, 어쩌면 기존보다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보석의 아름다운 빛을 되찾으면 좋겠다. 내가 그렇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근거는 없다. 낙관적인 나의,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