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두 개의 문자를 받았다. 진동은 같았다. 알림음도 같았다.
하지만 그 두 줄의 문장은 내 인생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밀어냈다.
[ISO 42001 심사원 자격 취득을 축하드립니다.]
문자를 읽는 순간, 손끝이 먼저 반응했다. 몇 달 동안 정리했던 조항 번호들이 떠올랐다. 4.1 조직의 이해, 6.1리스크와 기회, 8.2 AI 시스템 영향평가. 머릿속에서 표와 체크리스트, 데이터 흐름도가 자동으로 펼쳐졌다.
나는 이제 ‘ISO 42001 심사원’이었다.
- 인공지능 경영시스템을 심사할 수 있는 사람.
- AI를 관리하는 구조를 평가하는 사람.
그리고 거의 동시에 또 하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회사가 부도났어 빨리 와]
짧았다. 이상하리만치 담백했다. 몇 초 전까지 합격자였던 나는 순식간에 실직자가 되었다.
나는 사무실이 아닌, 집 거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 심사준비 때문에 자율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노트북에는 아직 재심사 대비 계획서 초안이 열려 있었다.
‘보완조치 일정표’라는 제목 아래, 나는 보안 통제 강화, 접근권한 재설계, 로그 모니터링 체계 개선 같은 문장들을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 문서가 아직 저장도 되지 않았는데, 회사는 먼저 저장 종료가 되었다. 웃기게도, 우리는 망하기 직전까지도 바빴다. AI 모델 성능을 개선했고, 해외 바이어와 화상회의를 했고, 수출을 위해 ISO 42001 인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서로를 다독였다. 투자자는 “AI 거버넌스 체계가 있느냐”를 물었고, 우리는 “곧 인증 예정”이라고 답했다.
나는 빅데이터 전문가였다. 데이터 정제, 모델 튜닝, 예측 정확도 향상. 그게 내 세계의 전부였다. 챗GPT가 등장한 이후, 업무는 오히려 쉬워졌다. 코드 초안은 몇 초 만에 나왔고, 문서 정리는 자동화되었고, 보고서는 그럴듯하게 완성됐다. 나는 더 빨라졌고, 더 효율적이 되었고, 더 적은 시간으로 더 많은 결과를 냈다.
그래서 안심했다.
우리는 잘하고 있다고 믿었다. ISO 42001을 준비하면서도 비슷했다. 조항을 이해하고, 문서를 만들고, 내부심사를 진행했다. 나는 심사원 교육을 들으며 ‘리스크 기반 사고’라는 말을 수십 번 적었다. AI 시스템은 기술이 아니라 경영의 대상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편향, 설명가능성, 데이터 품질, 보안 통제. 그 모든 단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지키는 것은 달랐다.
ISO인증 심사 마지막 날에 심사를 맡은 정이도 ISO심사원은 조용한 사람이었다. 문서를 빠르게 넘기지 않았다. 그는 한 페이지를 오래 보았다.
“이 접근 통제는 형식상으로는 갖추셨습니다. 다만 실제 운영 증빙이 부족합니다.”
나는 그 문장을 ‘경미한 지적’ 정도로 이해했다. 보완하면 되는 문제. 재심사 때 보여주면 되는 문제. 우리는 인증을 ‘통과’해야 할 시험처럼 대했다. 합격과 불합격의 문제로 생각했다.
그러나 ISO는 시험이 아니었다. 구조였다. 시스템이고 운영이었다. 사고가 나기 전에 멈추는 브레이크였다.
부도가 난 이유는 단순했다. AI 학습 데이터 일부가 외부로 유출되었다. 접근 권한 관리가 느슨했고, 로그 모니터링은 실시간이 아니었다. 문서에는 통제가 있었지만, 시스템에는 없었다.
우리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알고도 미뤘다. 일단 인증부터 받고 보자는 생각이 앞섰다.
합격 문자와 폐업 문자를 번갈아 읽으며, 나는 처음으로 ISO 조항을 다시 떠올렸다. 6.1. 리스크와 기회를 다룰 것. 8.2. AI 시스템 영향평가를 수행할 것. 운영 증거를 확보할 것. 그 문장들은 더 이상 시험 범위가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회사가 부도가 난 날 나는 심사원이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일하던 조직의 실패 사례가 되었다. 합격은 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부도가 나를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대신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왜 ISO를 준비했는가?
투자 때문이었나.
수출 때문이었나.
아니면 ‘있어 보이기’ 위해서였나.
그날 이후, 나는 ISO를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문서가 아니라 운영으로. 인증이 아니라 생존으로.
휴대폰 화면은 이미 꺼져 있었지만,두 문장은 아직도 선명했다.
[ISO 42001 심사원 자격 취득을 축하드립니다.]
[회사가 부도났어 빨리 와]
나는 합격과 파산 사이 어딘가에 서 있었다. 그제야, 정말로 ISO를 이해하기 시작했지만, 재심사를 통과할 자신감에 들떠 있던 마음이 가장 먼저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