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단순히 편해졌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건 내가 입사한 지 약 1년쯤 지났을 때였다. 대표는 늘 회의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AI 시대입니다.”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말이 너무 빨리 현실이 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하나의 프로그램 이름이 자주 들리기 시작했다.
“이거 AI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누군가 보고서를 작성하다가 말했다.
“초안은 AI가 만들어줬어요.”
개발자가 코드를 보며 말했다.
“이거 AI가 짜준 건데요?”
처음에는 조금 신기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조금 즐거웠다. 내가 하던 일들이 너무 쉽게 해결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쓰는 시간은 절반으로 줄었다. 데이터 분석 방법을 찾는 시간도 거의 사라졌다. 심지어 코드 작성도 몇 줄이면 끝났다. 내가 몇 시간 동안 고민하던 문제를 AI는 몇 분 만에 정리해주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세상이 좋아졌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내 일이 점점 쉬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왠지 모르게 불안하게 느껴졌다. 스타트업에서는 일이 줄어드는 것이 반드시 좋은 신호는 아니다. 특히 기술 회사라면 더 그렇다. 일이 줄어든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일을 대신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빅데이터 분석가였다. 데이터를 모으고, 정리하고, 분석하고 그리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만드는 것이 내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과정의 대부분을 AI가 도와주기 시작했다.
데이터 정리/분석 방법 제안/보고서 초안/코드 작성
나는 여전히 그 결과를 검토하고 정리했지만 예전처럼 “내가 직접 만든 결과”라는 느낌은 점점 줄어들었다.
마치 내가 AI가 만든 결과를 확인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굳이 내가 해야 할까?’
그 질문은 조금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그 생각을 애써 밀어냈다. 그 즈음이었다. 대표가 ISO 이야기를 꺼낸 것이.
“우리가 해외 시장을 준비하려면 AI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보여줘야 합니다.”
대표는 회의실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ISO 42001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때 나는 그 숫자를 처음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 솔직한 생각은 이것이었다.
‘또 문서 작업이겠네.’
스타트업에서 인증이라는 것은 대개 귀찮은 일의 시작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문서를 만들고 양식을 채우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감사를 받고 대개 그런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몰랐다.
ISO 42001이 단순한 문서 작업이 아니라 AI를 관리하는 구조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구조를 처음부터 만들게 될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도. 대표는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필순씨가 맡아주세요.”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회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모여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네… 해보겠습니다.”
그 순간에는 몰랐다. 그 말이 내 직업을 바꾸게 될 줄은. 그리고 언젠가 내가 다른 회사의 ISO를 심사하게 될 줄도. 돌이켜보면 그날 나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시작하고 있었다. 하나는 회사에서 처음으로 ISO를 준비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ISO를 배우기 시작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