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날, 회사는 ISO를 하겠다고 말했다

by 필순

그날, 회사는 ISO를 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때 내 직함은 꽤 그럴듯했다.


‘빅데이터 분석가.’


요즘 말로 하면 조금 더 멋있게 들릴 수도 있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AI 엔지니어, 혹은 데이터 아키텍트 같은 이름들 말이다. 하지만 실제 업무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데이터를 모으고, 정리하고, 분석하고, 보고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회사 이름도 그럴듯한 인공지능 스타트업이었다. 사무실 벽에는 항상 이런 문장이 붙어 있었다.


“우리는 데이터를 통해 세상을 바꾼다.”


솔직히 말하면 그 문장을 볼 때마다 조금 웃음이 나왔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서버부터 자주 멈췄기 때문이다. 그래도 회사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직원들은 젊었고, 대표는 열정이 넘쳤다. 투자 이야기가 오가고, 해외 진출 이야기도 가끔 들려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AI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보고서를 쓰는데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코드를 작성하는데 몇 줄이면 끝났다. 데이터 분석 방법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실력이 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모든 일을 대신해주는 존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었다. 챗GPT가 등장하고 나서 우리 회사의 업무 방식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회의 시간에 누군가 말한다.


“이거 AI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보고서를 작성하다가도 누군가 말한다.


“AI가 초안 만들어줬어요.”


코드를 작성하다가도 누군가 말한다.


“이거 AI가 짜줬는데요?”


처음에는 놀라웠다. 그다음에는 편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조금 불안해졌다. 내가 하던 일이 너무 쉽게 끝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야근은 사라졌다. 업무 속도는 빨라졌다.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회사는 잘 굴러가고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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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대표가 전 직원 회의를 소집했다. 대표는 늘 그렇듯 조금 들뜬 표정이었다.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그 말이 나오면 보통 두 가지였다. 투자 이야기거나, 새로운 사업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대표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우리가 해외 진출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회의실이 조금 술렁였다. 해외 진출이라는 단어는 스타트업에서 꽤 매력적으로 들리는 말이다. 대표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ISO 인증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순간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ISO요?”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ISO 42001입니다. 정확히는 ISO/IEC42001 : 2023입니다.”


그때 나는 그 숫자를 처음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대표는 꽤 진지했다.


“요즘 AI 기업들은 이 인증이 중요합니다. AI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보여줘야 하거든요.”


누군가 작게 중얼거렸다.


“또 인증 작업이네…”


몇몇 사람은 웃었다. 스타트업에서 ‘인증’이라는 말은 대개 귀찮은 일의 시작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대표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말했다.


“그래서 이 일을 맡을 사람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수출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입니다.”


그리고 내 쪽을 바라봤다.


“필순씨.”


나는 조금 놀랐다.


“네?”


대표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데이터도 잘 알고, AI도 이해하고 있으니까 필순씨가 맡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나에게 모였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느끼고 있었다.


이 회사에서 내가 맡은 일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것.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내가 하던 일들이 점점 더 쉽게, 그리고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는 것. 어쩌면 그 순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자리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게 시작이었다. 나와 ISO의 첫 만남이. 그리고 훗날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될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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