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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Nov 23. 2020

작별

천국에서 평안하길

길거리를 누비다 보면 가끔 곳곳에 박혀 있는 그때의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한 기억이 무섭거나 발길을 돌리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 기분이 굳어지고 기억의 흔적들을 애써 외면한다. 누군가에게는 늘 지나던 길, 살아가는 공간, 추억의 장소였을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런 곳으로 기억될 장소들이 형사들에게는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굳이 가고 싶지 않은 장소일 수도 있다.


누군가 연락이 되지 않는데 요즘 많이 힘들어하거나 이상한 문자를 보냈다든지, 유서나 유서 비슷한 글을 써놓고 나갔다는 등의 자살의심 신고를 받으면 경찰들의 마음과 몸은 더 바빠진다. 그리고 어찌 찾아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 조금씩 정리되어 드디어 행적이 확인되면 그 일대를 수색하게 된다. 대부분은 안전하게 발견되거나 다행히도 자살시도를 하는 중에 발견되어 소중한 생명을 구해내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검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사실 경찰이라고 해서 그러한 죽음을 모두 구하거나 막지는 못할 것이지만 그래도 고인을 주검으로 만나게 되면 그 안타까운 죽음 앞에 저절로 탄식이 나오고 슬픔 감정이 밀려온다. 그리고 조금 더 빨리 찾을 수 있었다면 살릴 수 있었을까. 왜 더 빨리 찾아내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 


당직을 서고 멀리 지방까지 실종자와 범인을 찾으러 출장을 갔다. 홀로 지내던 여성이 실종되었는데 남자 친구와 함께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남자 친구는 강력범죄를 저질러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지명수배가 된 사람이었는데 실종 여성과 함께 도피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몇 달 동안의 추적 끝에 단서를 잡았다. 내려가는 동안 차 안에서 잠을 자고 몇 시간 발품을 판 끝에 드디어 은신처를 알아내어 실종자를 발견하고 범인도 무사히 검거해서 올라왔다. 실종자는 가족들에게 돌려보내고 범인은 수배 관서에 넘겨준 후에야 퇴근을 했다.


다음 날 밀렸던 잠을 몰아서 자고 있는데 오후에 전화가 울렸다. 팀장님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자초지종 설명 없이 빨리 나오라고만 하고는 끊는다. 당직근무자인 임형사에게 전화를 했다. '형님 지금 빨리 나오셔야 할 것 같아요. 큰일 났어요. 영준이(가명)가 연락이 안 돼요' 전화상으로 더 따져 물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바로 전화를 끊고 사무실로 급하게 차를 몰았다.


아침에 영준이 가족들에게 며칠 동안 전화가 안된다고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고 했다. 어제 지방에 내려가면서도 통화를 했기 때문에 잘 근무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하는데 계속 받지 않았다고 한다. 형사들은 사무실이나 동료들의 전화는 무조건 받는다. 혹시 받지 못해도 전화가 왔던 것을 보면 바로 전화를 하는데 두어 시간이 지나도 전화를 받지 않자 임형사와 김형사가 혼자 지내는 원룸 자취방에 가보았다. 문은 잠겨 있는데 안에서 매캐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열려진 창문으로 들어가 보니 영준이는 없었는데 자살을 시도한 흔적이 있어 그것을 보고는 두 사람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했다.  


영준이의 마지막 행적이 확인된 곳으로 우리 팀과 경찰관들이 도착했고 몇 시간의 수색 끝에 어둑어둑해질 무렵 산자락 숲 속에서 영준이를 만났다. 형사팀과 과학수사팀이 와서 현장을 조사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인지, 왜 너는 나에게 힘들다 하지 않았는지, 내가 너에게는 그렇게 말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는지, 왜 너를 이렇게 허무하게 보낸 건지, 왜 너에게 진즉 힘드니 괜찮니 하고 물어봐주지 못했는지, 선배로서 형으로서 동료로서 도대체 너에게 해준 게 없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괴로웠다. 동생들의 상심이 더 깊어질까 봐 간간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영준이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장소로 선택한 곳은 자살의심 실종자를 찾기 위해 우리가 가끔 수색을 하던 지역에 있었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도 했다. 임형사는 열흘 전쯤에 영준이와 함께 그곳을 수색했다고 하면서 너무나 괴로워했다. 여러 가지 정황상 전날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통화를 했던 것이 우리가 영준이와 마지막으로 나눈 인사였고 우리가 지방에서 다른 실종자를 찾고 범인을 검거해서 올라올 때 영준이는 이미 이별을 선택한 후였다. 빈소를 지키고 화장을 하고 장지로 보내면서 남겨진 우리는 서로 안아주기도 하고 다독이기도 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버티어 냈다. 서럽게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울기도 했다. 아버님과 어머님, 유가족분들을 뵙기도 괴롭고 미안했다.  


이제는 거의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사무실 문을 열고 불쑥 들어오기만 할 것 같다. 그리고 우리의 아픔은 아직 진행형이다. 근무할 때면 그 지역을 수색할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신고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제 그곳도 나에게는 별로 가고 싶지 않은 장소가 되어 버렸고 아마 일부러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영준이가 장지로 떠난 다음 날 영준이가 있던 그곳에 가서 평소 좋아하던 술을 뿌려주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영준이가 잠든 곳에 예복을 입고 다녀오기로 했다. 그때 영준한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써서 전해줄 참이다. 그러고 나면 이제 영준이를 편하게 잘 보내 줄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한결 나아질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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