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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형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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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Nov 07. 2020

변사

잠시 긴 이별

형사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과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그중에는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워 싹 모두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즐겁고 좋은 추억의 장소였을 법한 예쁜 공원 벤치도, 멋진 고급 스포츠카도, 동화에 나올 듯한 아름다운 주택도, 화려한 야경의 스키장도, 웅장한 교회건물도, 한적하고 아담한 버스정류장도, 상쾌한 공기를 내뿜는 오솔길도......

형사들의 시간에서는 처참하고 잔혹한 범죄현장일 수 있다.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아무런 하소연도 못한 채 무너져 내렸을 고인의 마음과 몸이 형사들의 가슴과 머리에 단단히 박혀 버린다. 그래서 그곳을 다시 마주하게 되면 그들의 놀라고 두려운 눈동자와 고통과 괴로움을 토해내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그 아픔과 고통을 온전히 느낄 수는 없을 테지만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사람의 악함에 대한 분노와 서러움이 형사들의 온몸을 순간 에워싸게 된다. 


죽음을 일상으로 또 일로 만나게 되고 또 평범한 시민이라면 평생 듣도 보도 못할 끔찍한 죽음도 마주하게 되어 그 죽음을 익숙함으로 받아들이게 되지만 그 어느 죽음도 가벼이 여기지는 못한다. 


나에게 그런 현장이 또 하나 늘었다. 근무 날이면 가끔 수색하며 돌아다녔던 그곳, 누군가를 구해내고 또 누군가를 살려냈던 그곳에서 누군가는 지켜주지 못하고 잃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씨익 웃던 미소가 고요히 이별을 고한 모습과 겹쳐 자꾸만 아른거린다. 누군가의 꿈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괴롭다. 


하지만, 잊으려 애쓰지 않을 테다. 그 죽음이 헛되이 여겨지지 않도록. 그 죽음에서 누군가를 살릴 방법을 찾아내고 그 누군가의 꿈은 꼭 지켜줄 수 있도록. 부디 천국에서 평안하기를... 미안해... 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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