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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형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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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Oct 04. 2020

죽지 말아요

죽지 않아도 괜찮아질거예요.


                개인정보보호 및 사건 보안을 위해 사실을 바탕으로 각색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띠링' 

  업무용 폰에 신고 알림이 울린다. 

  '동생이 연락이 안 된다. 이상한 말을 했는데 잘못될 까 봐 걱정된다. 먼저 간다고 했다.'

  

  A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꺼지기 전 마지막으로 잡힌 신호는 '마음동'이다. 아마도 형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하고 전화를 끈 모양이다. 마음동으로 나가 A의 행적을 쫓았지만 단서를 쉽게 찾지는 못했다. 마음동을 뒤지고 다니는데 A의 주소지가 확인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이다. 마침 근처 주택가다.


  비슷한 집들이 몰려 있는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이다. 번지수를 확인하고 1층 세대부터 확인을 하는데 2층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계단을 뛰어 올라가니 창문 너머로 누군가 거실에서 '꺼윽꺼윽' 헛구역질을 하고 있다. 

  "괜찮으세요?"

  남자는 대답 대신 고개를 들어 흘깃 한 번 쳐다보더니 '필요 없으니까 다 가"라고 고함을 치며 달려와 창문을 걸어 잠가 버렸다. 그리고는 또 '꺼윽꺼윽' 헛구역질을 해댄다. 달려올 때 얼굴을 보니 신고자가 보내준 사진과 영락없이 닮았다. 틀림없는 A다. 


  아무리 흔들어도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 좀 열어보세요", "다 필요 없으니까 가라고, 가라고" A는 헛구역질을 하면서 악을 써댔다. 지원을 요청하고 주변을 돌며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찾았다. 마침 주방 쪽에 작은 창문이 열려 있다. 그곳을 통해 A의 상태를 살피면서 대화를 시도했다. "도와 드리려고 온 거예요. 문 좀 열어보세요", "다 필요 없으니까 제발 가라고", "걱정되어 그래요", "내가 죽는다는데 왜 상관이야?", "문 안 열어주시면 강제로 뜯고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들어오기만 해 봐, 나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잠시 실랑이를 하다가 A가 또다시 구토를 시작해서 문을 뜯고 들어갔다. "들어오지 말라"라고 소리치는 A를 진정시키고 설득해서 구급대의 응급처치를 받게 했다. A는 죽으려고 락스를 마셨다고 했다. 


  A는 30대에 아내를 먼저 보내고 홀로 아들을 키웠다고 했다. 다행히 아들이 잘 자라주어 늘 아들을 자랑스러워하고 뿌듯했다고 한다. 학창 시절과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상도 많이 타서 큰 기쁨이 되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들이 몇 달 전 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살 이유도 없어서 아들을 따라 가려했다 한다. 아마도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상실감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져 아들을 잃은 후 몇 달을 그렇게 고통 속에서 지내왔던 것 같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내가 건네는 말이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선생님, 죽지 마세요. 아드님도 원하지 않을 거예요."


  삶의 풍파에 밀려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렇게 서 있다가 고통과 무서움에 스스로 벼랑 밑을 선택하기도 한다. 자살하는 사람은 죽고 싶어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 고통이, 이 무서움이, 이 짓누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두려움, 도무지 바뀌지 않는 이 캄캄한 현실을 버티어 내기가 너무나 힘이 들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을 하기 전까지 다른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인지 살아갈 구실은 없는 것인지 계속 생각한다고 한다. 


  "죽지 않아도 된다. 죽지 않아도 괜찮아진다. 죽지 않아도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그 마음을 거들고 너무 무서워하지 않도록 곁을 지키고 캄캄한 암흑 속에서도 아주 작은 빛줄기를 바라보며 힘을 얻고, 그렇게 견디어 살아내다가 그 작은 빛줄기가 고단한 마음에 스며들어 어두움을 덮도록 흔들리는 불빛이라도 되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바로 너와 내가.


  "죽지 말아요. 죽지 않아도 좋아질 거예요. 우리 같이 한 번 살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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