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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May 18. 2020

잘 먹겠습니다

개인정보 보호와 사건 보안을 위해 각색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조금 이른 저녁, 구내식당에 가려고 사무실 문을 열고 나서는데 마침 무전 지령이 떨어진다.

위험방지, 코드 원, 신고자가 아무런 말 없이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전화가 끊어지고 전화 연락이 안 되고 있는 상황, 주변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로 보아 도로와 인접한 곳으로 추정, 신고 휴대전화 위치 값 주변으로 출동해서 확인하기 바랍니다.

  관내에서 영세민들이 모여사는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이다. 위치 값 근처 동네 초입 대로변에 있는 조그만 슈퍼마켓 앞 파라솔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조금 남루한 행색의 초로의 아저씨가 보인다. 일단 도로가에 차를 대고 내리면서 신고자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며 파라솔 탁자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응시하는데 다행히 '드르르륵' 막걸리병을 흔들며 전화기가 울린다.

  '술맛 어때요? 앉아도 되죠?' 하며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마주 앉았다. '신고하셨죠? 무슨 일이세요?'

  술 취한 얼굴로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그냥 가쇼, 필요 없으니까' 한다. 그리고는 물기에 젖어 흐물 해진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라 붓고는 냉큼 비운다.

  '얘기해 보세요, 귀찮게 안 하고 얘기만 듣고 갈 테니까.' 다시 한번 눈을 들어 빤히 쳐다보길래 눈을 마주 보며 '얘기 안 하면 안 가요' 하는 의지를 보였더니 한 숨을 한 번 내쉬고 넋두리를 한다. 젊을 때는 장사를 크게 해서 돈도 많이 벌었는데 지금은 기초 수급자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고 몇 달 전에는 이혼까지 당해 힘들다고 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슈퍼에 들어갔다가 캔커피 두 개를 손에 들고 나온다. 그중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아이고 무슨 커피를 다 주세요?' 하며 '고맙습니다.' 하고는 그 자리에서 뚜껑을 따서 마셨다. 잘 달래서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위험성이 있거나 범죄피해가 있는 것으로는 판단되지 않아 도움이 필요하면 신고를 하라고 당부하고는 다른 신고를 처리하기 위해 일어나며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 커피 잘 마셨어요. 술 조금만 드시고 건강하세요'


  평소에는 업무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판기 커피 한 잔도 받지 않지만 건네주시는 커피를 받아 마신 것은 한 일 년 전쯤 이 동네에서 신고를 받고 나가 만난 아주머니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아주머니는 약간 절듯이 뒤뚱거리며 걸으셨다. 관절염 때문에 아파서 잘 걸을 수가 없고 오래 걸으면 벽이나 기둥을 붙잡고 한참을 쉬었다 걸어야 한다고 하셨다. 아프고 불편한 다리로 집 앞에까지 나와 계시던 아주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이 자신이 아프게 된 후로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들어오면 구박을 해서 속이 상하는데 잡아갈 수 없냐고 하신다. 한참을 푸념과 넋두리를 늘어놓으시던 아주머니는 '바쁘신데 죄송하다. 내 말을 들어줘서 고맙다'며 작은 단칸방 한편에 있던 낡은 문갑 서랍을 열고 아껴 놓으신 듯한 비타민 드링크를 꺼내어 주셨다. 나는 경찰은 이런 거 받으면 안 된다며 '마음만 받을게요, 고맙습니다.' 하며 일어나서 나오려는데 '나 같은 사람이 준 거라 그러는가?'라며 마음 상한 목소리로 한 숨 쉬며 하시는 말씀을 듣고는 어느새 드링크를 받아 들고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피곤했는데 잘 마실게요' 했더니 '그래요, 내가 줄게 그거밖에 없네'하며 기쁜 내색을 하신다. 복귀하는 차 안에서 드링크를 홀짝홀짝 마시며 생각했다. 그분이 나에게 주려고 했던 것은 드링크가 아니라 나에게 전하고 싶은 아주머니의 좋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감이 아니었을까. 나 같은 늙고 병든 기초수급자가 주는 거라 안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속이 상할 그 마음, 다른 사람에게 전하려고 했던 그 좋은 마음이 거절당한 것이 자신의 처지 때문이라고 여기며 느낄 민망함과 자괴감 때문에 더 이상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고 드링크를 받아 들었다.


  괜히 신고를 해서 바쁜 경찰관을 힘들게 했다는 미안함과 그래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괜히 빚이라도 진 것처럼 왠지 불편한 마음을 나도 이 정도는 베풀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슬며시 덜어보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뇌물도 아니고 고가의 선물도 아닌데 그 마음을 냉정하게 거절하는 것이 오히려 그 마음에 어려움을 더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도와드려야 할 분들에게 받게 된 것이다. 아니다. 그분들은 항상 도와드려야 한다는 생각도 그분들을 무시하는 편견일 수도 있겠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고서도 코로나 사태로 아직 학교에 가보지 못한 아들이 온라인 수업 중에 과제를 받았다. 부활절 즈음이었는데 부활절 달걀을 준비해서 사회를 위해 봉사하시는 분들에게 선물로 드리라는 과제였다. 아들과 함께 장을 보러 가서 구운 계란과 비타민 드링크, 초콜릿, 포장지를 사 가지고 와서 예쁘게 리본도 묶고 정성스럽게 포장을 했다. 어느 분들께 드려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아빠도 경찰관이니 동네 파출소에 드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고 아들도 그게 좋겠다고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웃음을 한 가득 머금고 달걀 꾸러미를 들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축 처진 어깨와 실망한 표정으로 꾸러미를 그대로 들고 왔다. 파출소에 가서 인사를 하고 과제 설명을 드리고 선물을 드리려고 했더니 마음만 받겠다며 한사코 거절을 하셔서 못 드리고 그냥 왔다는 것이다. 경찰 아저씨들이 고맙다며 칭찬도 해주시고 웃어주시기도 했는데 선물을 드리지 못해서 서운하고 속상하다고 했다. 경찰은 선물을 받으면 안 되는데 아빠가 동료들을 생각하는 마음에 잠깐 잘못 생각한 것 같다며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안 그래도 한 편으로는 선물을 안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걸리긴 했지만 부활절 달걀이고 학생이 과제로 하는 것이기도 해서 받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부담이 되었나 보다. 괜한 부담과 수고를 하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들과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부활절 달걀은 아파트 경비원 분들께 드리게 되었는데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경비원 분들이 너무 좋아하셨다며 덩달아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이다.   


  그 마음을 잘 받는 것도 그 마음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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