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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형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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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Apr 19. 2020

뭐라고?

사랑이 아닙니다. 범죄입니다.


  '만 13세 넘었잖아요?'


  아동 성폭력 혐의로 피의자 A를 체포했을 때 그가 나에게 처음 던진 말이다. 반성하는 듯 체념하는 듯 고개를 떨구고 체포에 순순히 응했지만 그는 작은 목소리지만 단호하게 그렇게 말했다. 조금의 원망이 섞인 듯도 했다. 


  '뭐?'

  이 따위 변명을 할거라고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들으니 어이가 없고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잘못이 없다는 겁니까?'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서로 사랑했습니다.'


  A는 SNS로 알게된 여중생에게 접근하여 고민을 상담해 주면서 신뢰 관계를 형성한 다음 칭찬과 선물 공세로 부모와의 갈등으로 교우관계 실패로 의지할 곳 없는 피해자의 환심을 사는 이른 바 그루밍으로 피해자가 피의자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피해자가 만 13세가 되자마자 피해자를 유인하여 자신의 차 안에서 모텔에서 추행과 강간을 하기 시작했다. 피해자가 이건 아닌 것 같다고 거부하거나 하면 피의자는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이러한 성적인 관계는 자연스러운 거라고 끊임없이 세뇌시키면서 자신의 성적인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다시는 안만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몇 일동안 연락을 끊어 이미 피의자를 의지하고 있는 피해자가 피의자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응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피해자가 피의자의 요구에 호응했다는 사유로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나서 혐의 입증을 위해 고생도 좀 하고 피해자 변호인의 도움도 받고 해서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기소 의견으로 송치를 했다. 피의자는 유부남이었고 유치원을 다니는 딸이 있었다. 자신의 SNS 계정에 딸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미성년자 의제강간으로 처벌받는 피해자의 나이가 만13세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생일이 지난 다음 날부터 간음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리고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주장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 미성년자 의제강간 적용 나이가 터무니 없이 낮다고 생각하고 법률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엊그제 법무부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의제강간 피해자의 연령을 만13세 미만에서 만16세 미만으로 상향한다고 하니 늦은 감이 있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N번방 때문에 미성년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탓도 있지만 그동안 연령 상향을 위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노력해 주신 여성단체와 법조계, 인권단체 등 여러분들의 노고가 크다고 생각한다. 


  법률이야 어찌 되었든 자신의 잘못된 욕정을 사랑으로 포장하지 말자. 그대들이 과연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가? 우리 아이들이 성적인 일탈행동을 하거나 성적인 피해를 당하는 이유는 어른들이 여전히 여성을 돈으로 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음란물을 돌려보는 것 정도는 그저 호기심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것들을 본능이라 어쩔 수 없다고 정당화하면서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의제강간 #그루밍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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