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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형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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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Feb 19. 2019

운수 좋은 날

그대의 꿈을 지켜 내길... 


개인 정보 보호와 사건 보안을 위해 사실을 기반으로 각색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참 운이 좋았다.


정신없던 야간 근무가 끝나 가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아침에 야속하게도 실종 신고가 들어온다.


실종팀!! 언니가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112 신고, 즉시 출동하여 확인 바람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순찰차가 도착해 신고자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새벽일을 하고 있는 동생은 새벽에 언니에게 문자를 받았다.

힘들다.. 이해해줘.. 미안해..
언니 왜 그래? 나쁜 생각하지 말고.. 일 끝나고 금방 갈게


언니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 아무래도 불안한 동생은 사장님께 말씀드리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피곤한 몸으로 잠이 들어 계시고 언니는 방에 없다.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차가운 냉기만 훅 들어온다. 세 모녀의 식탁으로 쓰는 낡은 반상 위에 노트를 찢어 쓴 메모가 놓여 있다. 익숙한 글씨체다. 


하루하루가 힘들다. 내가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사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엄마, 아빠, 동생아 미안해요. 이해해줘. 다음 세상에서 만나면 꼭 행복하게 살자.


 언니가 자고 있어야 할 침대에는 언니의 휴대폰과 지갑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머리가 하얘졌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고 '어떡해, 어떡해'만 연신 되뇌고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동생은 112에 신고를 했다.


언니가 두고 간 휴대폰을 살펴보니 친구들에게도 '고마웠어', '행복하게 잘 살아' 하는 짧은 메시지를 보낸 후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문자를 보낸 거였다. 메모와 문자메시지를 보니 정말 극단적인 마음을 먹고 나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빨리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형사님, 우리 언니 죽지 않았겠죠? 빨리 좀 찾아주세요. 제발 찾아주세요. 우리 언니 어떡해요? 불쌍해서 어떡해요? 제발 빨리 찾아주세요'


상황은 안 좋아 보였지만 '괜찮을 거예요. 무사할 거예요. 너무 염려 마세요.'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순찰차는 벌써부터 주변을 수색을 시작했다. J 형사와 나는 집을 나와 어디서부터 동선을 추적해야 할지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형님, 소지품도 다 놓고 옷도 제대로 입고 나간 것 같지 않은데 자살을 시도한다면 집 근처이지 않을까요? 빈 건물이나 옥상 같은 데부터 뒤져보죠."


"그래, 좋은 생각이다. 우선 가까운 건물부터 뒤지면서 지원 요청하자."


"우선 근처에 제일 높은 건물부터 올라가 보죠. 옥상에서 보면 웬만한 건물 옥상은 다 보일 거예요."


"오케이"


주변 건물보다 한참이나 솟아 오른 상가 건물 2곳이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 건물을 출입문이 잠겨 있었다. 황급히 두 번째 건물로 뛰어간 J 형사와 나는 1층 출입문을 밀었다. 다행히 열려 있다. 계단을 뛰어 올라가 옥상으로 통하는 차가운 철제 문의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열려 있다. 끼익 소리를 내는 육중한 문을 밀어젖히니 추운 냉기가 화악 밀려온다. 옥상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벤치 뒤에 무언가 시커먼 게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여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 


"여보세요, 괜찮아요? 이름이 뭐예요?"


"으... 으..."


눈을 뜨고 쳐다보기는 하는데 말을 하지 못한다. 


"J 형사, 우선 119에 구급차부터 부르고 상황실에 보고 좀 해줘"


새벽부터 지금까지 차디찬 옥상 바닥에 쓰러져 있었나 보다. 롱 패딩을 입고 있긴 했지만 얇은 운동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다. 손과 발은 벌써 빨갛게 변해 얼음장이다. 부축을 해서 일으키려는데 아픈 신음소리만 내고 몸을 가누지 못한다. 더 이상 체온이 떨어지지 않게 손과 발을 주무르면서 구급대를 기다렸다. 연락을 받고 온 동생과 엄마가 먼저 현장으로 달려왔다. 동생은 쓰러진 언니를 보자마자 와락 끌어안고는 구급대가 올 때까지 언니의 몸을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드디어 구급대가 옥상으로 올라오고 소방관들과 함께 언니를 들어 들 것으로 옮겨 구급차에 태우고  응급실로 향했다. 골목 저쪽 큰길로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는 구급차를 바라보며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와, 형님 어떻게 딱 찍어서 갔는데 거기에 있죠?"


"네가 촉이 좋아서 사람 목숨 구했다. 네가 살린 거야."


"아니에요, 운이 좋았죠. 그나저나 정말 천만다행이네요.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어요."


J 형사의 기지 덕분에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참으로 고맙다.


참 운수 좋은 날이다.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그녀가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쓰러지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와 가족들이 서로 다독이며 행복을 찾아가기를 온 맘 다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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