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

by 드림포터

맨발로 2층 발코니 난간을 밟고 얕은 경사의 지붕 위에 올라 큰 대자로 드러누워 밤하늘을 바라본다. 마당 한편에 자리한 적당한 크기의 너럭바위에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곤 했는데 시골 모기에 몇 번 물린 뒤 지붕 위로 자리를 옮겼다. 퇴직금 보태 주택을 지을 때 자금이 부족해 값싼 슁글 소재로 지붕을 올렸는데 그 바닥이 평평하고 미끄럽지도 않아 누워 있기에 적당하다. 해발 삼백 고지의 산 중턱에 워치 한 덕에 주위에 그 흔한 가로등 마저 없어 조명등을 다 끄고 나면 온연한 밤하늘을 있는 그대로 맞이한다. 특히 비 온 뒤에는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 여름밤 몽유병 환자 마냥 속옷 차림으로 지붕 위에 올라 밤하늘을 쳐다본다. 옅은 구름 같은 은하수 사이로 한 떼의 별똥별이 비처럼 쏟아진다.


가장 어두울 때 별은 가장 밝게 빛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별은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한다. 빛의 장막을 걷어 버리면 비로소 감추어진 진실이 드러난다. 빛은 절대선의 광영을 누렸고 어둠은 부정적 이미지로 악을 대변했다. 하지만 밤은 태양이 우주의 아주 작은 한 부분임을 깨닫게 한다. 태양은 저렇게 많은 별중에 작은편에 속한다고 한다.


도시에서 고통받던 불면증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밤의 일부가 되어 우주를 유영한다.

빈 공간이 펼쳐져 있다. 완벽한 진공 상태의 절대 빈 공간.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멈춰진 공간. 시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한때 역동적이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넘어선 웅장함 과 경외감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잊힌 고요의 바다. 시작과 끝, 선과 악, 어둠과 밝음이 없는 우주 이전의 공간. 공간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

생각을 멈춘다.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삭제하고 지식을 습득하기 이전의 상태로 포맷한다.

마지막 내 존재마저 지워 버린다.

인식하는 공간은 물질적 관점에서 절대적으로 비어 있으나 공간의 관점에서 물질의 영역이 공간이다. 빛 알갱이 하나 존재하지 않는 공간은 완벽하게 채워져 있다.

거대한 에너지 가 정지된 상태로 때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억겁의 시간? 아니면 찰나의 순간?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 에서의 억겁의 시간은 찰나의 순간보다 길지도 짧지도 않다.

민들레 홀씨보다 작고 가벼운 입자 하나가 홀연히 나타났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 작은 입자 하나가 잔잔한 파동을 일으킨다. 아주 느리고 미세한 파동이지만 그 울림은 저항이 없는 빈 공간에서 무한대로 퍼져간다. 물리적 저항이 없는 상태에서 물질을 수반하지 않은 파동은 어떠한 형태의 에너지도 없이 무한대로 뻗어 나가며 서로의 부딪힘 속에서 파장의 길이와 빠르기를 조금씩 달리 한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거칠고 격렬하게.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공간은 거칠게 충돌하며 잘게 부서져 눈송이처럼 흩날린다. 곳곳에서 크고 작은 소용돌이가 일며 공간을 집어삼킨다. 거대한 소용돌이는 작은 소용돌이를 집어삼키며 덩치를 키워간다. 붕괴되고 찢긴 공간 사이로 아주 작고 미세한 알갱이가 마치 안개처럼 어둠을 뚫고 퍼져 간다.

무에서 유가 창출되는 순간. 에너지가 소멸되며 입자가 생성된다. 비로소 공간에 물질이 생성되며 장대한 우주의 시간이 시작된다. 물질은 질량을 동반하며 중력의 힘을 발휘하며 주위의 물질을 끌어당겨 세력을 확장한다. 항성이 생겨나고 항성 주위로 위성이 자리를 잡는다. 항성 간에 세력 다툼이 일어나고 결국에는 하나의 거대 항성이 탄생한다.

그 거대 항성은 결국 과도한 중력의 힘을 주최하지 못하고 스스로 붕괴된다. 그리고 붕괴된 자리는 블랙홀이 되어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새벽녘 박새의 앙칼진 울음소리에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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