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연어의 도전

by 드림포터

시간에게는 치유의 힘이 있다. 오염된 물속 깊숙한 곳, 어둡고 조용한 바닥에서 이슬은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정지된 듯, 변화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자연은 절대 멈추지 않으며, 그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다. 물속 작은 미생물들이 오염된 하천을 서식지로 삼으며 독소들을 분해하기 시작하자 안개가 걷히듯 주변이 밝아진다. 마침내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족쇄를 채운 듯 하염없이 수렁으로 끌어당기던 수은 찌꺼기가 바닥의 날카로운 자갈과 모래에 조금씩 쓸려 나갔다. 좁은 개천은 어느새 넓은 강으로 바뀌었다.


한 떼의 연어가 무리 지어 거센 물살을 맞닥뜨리며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폭포가 가로막히자 물살을 가르며 거침없이 뛰어오른다. 마치 주술에 걸린 듯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길이의 예닐곱 배는 족히 넘어 보이는 폭포는 쉽사리 길을 내어 주지 않는다. 하지만 연어의 강한 의지를 폭포는 꺾지 못한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상류로 올라선다.

거친 물살과 날카로운 자갈, 바위에 부딪쳐 찢긴 비늘 사이로 검붉은 상처가 드러난다.

그러나 이 상처들은 단순히 육체적인 흔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들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그들의 여정, 자연의 가혹한 시험을 이겨낸 증표 이자, 생명의 순환에 기여하는 강렬한 의지의 표현이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지친듯한 연어가 은빛 연어에게 묻는다.

"왜 이런 고통을 참아가며 힘들게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나요?"

상처 입은 몸에도 불구하고 눈빛 만은 선명하게 빛나는 은빛 연어가 대답한다.

"비늘이 떨어져 나가고 살갗이 찢어지는 고통은 견딜 수 없이 힘이 들지만,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야. 고통은 두려움의 이자 생명을 부여받은 이들의 특권 이기도 해. 천년을 버텨온 저 바위는 고통을 알지 못해.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연어들의 대화에 조용히 귀 기울이던 흰 수염 잉어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삶을 살면서 굳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선택하는 건가? 하루하루를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아도 아쉽고 짧은 것이 인생인데"

듣고 있던 은빛 연어가 반문한다.

"그렇게 몇백 년을 산들 무슨 의미가 있나요?"

흰 수염 잉어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매년 수십만 개의 알을 낳고, 그 알들이 다시 성장하여 또다시 수십만 개의 알을 낳아. 이렇게 백 년을 살며 번식해 왔지. 이 강에 사는 모든 잉어는 내 가족이자 후손이란다. 우리 덕분에 이 생태계는 건강을 유지하고 있어. 끊임없는 번식을 통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우월한 유전자를 전달해 온 거야. 그 결과 이렇게 장수할 수 있는 거라네"


은빛 연어가 다시 묻는다. "그저 본능에 따라 행동한 결과 아닌가요?"


흰 수염 잉어가 말을 이어갔다.


"물론,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단순한 삶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본능을 따르는 것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길이라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그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행복이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은, 신의 섭리에 반하는 일이야. 자네도 결국, 그 길은 고통만을 남길 뿐이라는 걸 깨달을 거야."


"우리 잉어의 삶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흘러가. 강물처럼 말이야. 우리는 큰 소란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연의 일부로서 역할을 해나가지. 이 강물이 평화롭게 흐르듯, 우리의 삶도 그렇게 흘러가는 거야."


연어와 잉어의 대화를 듣고 이슬은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연어의 강인한 삶과 잉어의 순응하는 삶 모두 자연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러한 다양성이 자연의 균형과 생명의 순환을 가능하게 한다. 연어와 잉어의 삶 모두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가치를 상징하며, 모두 자연의 소중한 일부이다. 어떠한 삶이 좀 더 가치 있는 삶이 될 수 있을까?’


흰 수염 잉어가 은빛 연어에게 다시 묻는다.

"그러는 자네는 고통스러운 삶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

은빛 연어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세계를 횡단하는 여정 끝에, 저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세상의 끝에 도달했습니다. 그곳은 빙하로 이루어진, 투명한 바위들이 마치 물결치듯 흐르는 경이로운 장소였죠. 태양과의 조화 속에서, 밤하늘은 불꽃놀이처럼 형형색색의 오로라로 아름답게 수놓아졌습니다. 그 눈부신 곳에서 저는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깨달음! 이런 고통을 감내할 만큼 가치가 있는 건가?"


"물론입니다. 어르신은 아마도 치통의 고통을 겪고 계실 것입니다, 맞나요? 이가 없으면 고통도 함께 사라지죠. 그렇지만, 고통을 피하기 위해 모든 이를 포기한다면 그건 어리석은 일이에요. 이가 없으면 세상의 다양한 맛을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단맛은 분명 삶에 큰 즐거움을 줍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단맛은 우리 건강을 해칠 수 있어요. 반면, 쓴맛은 처음에는 불쾌할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그 속에서 발견되는 여유와 깊이를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마치 커피의 깊은 향과 같죠. 사랑과 행복이 단맛에 비유된다면, 고통은 쓴 커피처럼 삶에 필수적인 생명의 맛을 더해줍니다. 짠맛과 신맛, 행복과 고통의 조화로운 혼합이 삶을 풍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모든 맛 중에서 가장 위대한 맛이 무엇인지 궁금하신가요?" 흰 수염을 가진 잉어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바로 물의 맛입니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물의 맛. 겉보기에는 아무런 맛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의 모든 맛을 아우르는 가장 위대한 맛입니다. 세상의 끝에 도달하면, 그 황홀하고 아름다운 맛의 결정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맛을 알게 되면, 고통도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흰 수염 잉어가 다시 묻는다.

"그렇게 힘들게 찾아간 세상의 끝에서 왜 다시 이곳을 찾아왔는가?"

"여행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아쉽지만 저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제 무겁고 낡은 몸을 벗어 버리고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죽음이 무섭지는 않은가?"

"우리가 매일 밤 두려움 없이 잠에 드는 것은, 아침에 다시 눈을 뜰 것이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죽음을 단순히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앞에서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마치 졸업이 종착점이 아닌 더 성숙한 시작점으로 여겨지듯, 죽음도 또 다른 모험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단지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이라는 사실뿐입니다."


은빛 연어는 알듯 말듯한 이야기를 남기며, 짧은 인사를 건네고는 강한 결의를 담아 강물을 힘차게 거슬러 올라간다.


"백 년을 살아오며 세상 이치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부해 왔건만, 십 년도 살지 않은 연어보다도 아는 것이 없네. 그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온 것인가?"

흰 수염 잉어는 허탈하게 쓴웃음 지으며 흙탕물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은빛 연어에게는 고통도 죽음도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그는 이미 그것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슬은 그들의 대화를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세상의 끝에 가보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생겼다. 그곳에서 '맛의 결정체'라고 불리는 황홀하고 아름다운 물을 경험하고 싶어졌다.


연어의 불굴의 의지와 폭포를 거스르는 그들의 여정은 이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울림을 준다. ‘그들의 도전은 자연의 일부이며, 생명이 주어진 모든 존재가 직면하는 고난과 투쟁의 상징이야. 나는 연어처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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