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에서, 나와 마주할 것

워킹맘, 절망이라는 이름의 터닝포인트에 서다.

by 유선영 소장

고백으로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 저는 개인보다 조직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입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패기 있던 꽃청춘 시절에는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신념으로 군대에 다녀온 여성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4 둥이를 둔 워킹맘임에도 일터에서의 제 별명은 늘 맹렬하고 열정적인 캐릭터였습니다. 패튼 장군(2차 세계대전 당시 대전차 군단을 이끌었던 무적의 그분), 불독처럼 말이지요. 이러한 저의 패기는 결혼 후에도 출산 후에도 큰 번뇌 없이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삶을 선택하도록 도왔습니다. 감사하게도 새로운 자리에서 전문성을 키워나갈 수 있었고, 과분한 인정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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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저는 또래들보다 빨리 리더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성 팀장들과 겨루며 목표를 달성해 나갔습니다. 제게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와 일의 추진력, 어려운 상대를 설득하고 갈등 상황을 풀어나가는 강점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육아와 일 사이에서 버거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더 철저하게 일중심으로 조직 중심으로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저를 조직이 원하는 여성인재라고 칭찬했습니다. 불과 3년 전까지 저 역시 "조직형 인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그렇게 버텨갔습니다.


하지만 조직에서의 승승장구는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매출 부서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던 저에게 혹독한 시련의 때가 찾아왔습니다. 열심히 할수록 점점 더 성과가 나빠지는 그해에 저는 얽혀버린 실타래를 풀기 위해 간절히 노력하고 처절히 부지런을 떨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무너진 자존심을 다시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조직에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는 게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내가 문제인지 내가 모르는 환경의 문제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고민은 저를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해보다 치열했던 그해 그렇게 저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 쓸쓸하던 밤 팀원과의 치맥 자리에서 그 녀석의 격려에 결국 저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쏟았습니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여전히 눈이 뜨거운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뭘 위해 넌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니?",

“지금처럼 삶이 통째로 흔들릴 때 널 잡아줄 중심은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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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묵은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답할 용기가 없어서 마음속에 모른 척 치워두었던 질문이 기다리고 기다리며, 등장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질문으로부터 저는 뭔지 모를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묵직한 질문을 전면적으로 마주하기 위해 지난 1년이 그렇게 처절하고 외로웠나 보다 싶었습니다. 잘 나가던 시절 가끔 찾아오던 참으로 매력적인 이직의 기회를 차 버린 이유가 이 질문과 만나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답해보기로 합니다. 지금 답할 수 없다면 진지하게 답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신기했습니다. 내 마음속 묵은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을 하겠다는 결심만으로도 마음속 흙바람이 잦아들었습니다. 피부가 없는 사람처럼 민감해졌던 마음도 평온을 찾아갔습니다. 작은 번뇌들이 큰 질문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는 것처럼 그렇게. 그렇게 저는 큰 질문과 함께 4년 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씩 정리되고 있는 저의 진짜 생각을 글로 풀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글로 풀어낼 저의 생각들은 그동안 자주 떠오르는 얼굴들에게 먼저 전하고자 합니다. 일과 육아, 일과 육아와 나를 함께 챙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초보 워킹맘 후배들. 이제 그들과 함께 제가 먼저 겪었던 고민, 그리고 얼핏 보이는 실마리를 나누고자 합니다. 늦은 밤 전화로, 카톡으로 전해왔던 워킹맘 후배들의 깊은 한숨에 대해 진지하게 답하는 숙제를 시작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아참 하나 더. 이 시도가 첫 물결이 되어 머지않아 같은 고민으로 끙끙거리게 될 우리 집 4 둥이들과 그 친구들에게 1스푼의 용기와 1스푼의 전략으로 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


“허구한 날 기다려야만 하는 사람들을 나는 가련하게 생각한다. 기다린다는 것은 가게 주인이 손님을 기다리듯 기차역사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듯 그렇게 막연히 기다리는 게 아니다. 끊임없는 시도와 물음 속에서 기다려라. 나는 다양한 시도와 방법을 통해 나의 진리에 이르렀다. 내가 사다리 하나 만으로 먼 곳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이까지 오른 것이 아니다. 기다리는 자는 매일같이 허다하게 죽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