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너지는 순간, 당신으로 부터의 혁명을 시작하라!
마트 입구가 소란스럽네요. '애엄마들이 무슨 큰 죄를 지은 걸까요?' 고개를 돌려 보니 누군가 장을 보려고 꺼낸 카트 구석에서 돌돌 말아진 기저귀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악담을 내뱉는 그 사람에게 찾아온 1분 전의 해프닝. 해프닝의 사연은 이미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이미 정해둔 대상에게 작은 연결 고리만 생겨도 증오의 메시지를 던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존경보다 증오가 넘치는 세상에서 어느 날 갑자기 뜨거운 물이 얼굴에 쏟아질지도 모른 채 살고 있는 셈입니다. 이 해프닝을 보며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 속 주인공의 커피 사건. 주인공 그녀가 참으로 오랜만에 가을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날. 같이 나온 딸아이가 유모차에서 곤히 자는 동안 맞은편에 때마침 오픈한 커피숍을 발견하고 할인된 가격의 아메리카노 한잔과 함께 벤치에 앉았던 그날. 밖에서 마시는 커피가 맛있다는 생각이 막 들 때쯤 그녀의 바로 옆자리에서 그녀를 향해 날아오던 증오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한국 여자랑은 결혼 안 하려고..."
그러고 보니 소설 속에 지하철 사건도 있었군요.
"배불러 까지 지하철 타고 돈 벌러 다니는 사람이 애는 어쩌자고 낳아?"
주인공 김지영, 그녀의 마음은 여러 번 무너졌습니다. 그녀가 뭘 잘못한 걸까요?
소설을 읽는 내내 김지영 그녀는 안쓰럽고 한편 답답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평범한 듯 평온했던 그녀가 결혼과 출산이라는 관문을 넘어 생기와 자아를 잃어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저렇게 사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을까?”라는 질문을 얻게 됩니다. 우리 또한 일과 육아, 일과 육아와 나 사이 어디쯤에서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다행스럽게도 '그녀처럼 말고, 달리 사는 방법'을 묻는 우리에게 힌트를 주는 영웅들이 존재합니다. 김지영 그녀의 주변에서도 작은 혁명, 나로부터의 혁명을 실행으로 옮기는 영웅들이 있었죠. 영웅들의 활약상을 한번 보실까요?
Case 1. "불공평해. 매번 번호 순서대로 밥 먹는 거 불공평해. 밥 먹는 순서를 다시 정하자고 해야겠어."
"선생님 급식 먹는 순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학생이던 유나, 급식 순서를 공정하게 바꿔주실 것을 선생님께 요구하는 장면 중에서)
Case 2. "지영이 실내화긴 한데 김지영이 안 했어요. 제가 봤어요." (교탁까지 불려 나가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선생님께 혼이 나던 지영을 대신해 진짜 범인은 지영이 아님을 해명해 주던 반 친구의 활약 장면 중에서)
Case 3. "여자애들이라고 싫어서 안 하는 줄 아세요? 치마에 스타킹에 구두까지 신겨 놓으니까 불편해서 못하는 거라고요. 저도 국민학교 때는 쉬는 시간마다 말뚝박기 하고 사방치기 하고 그랬어요." (지영이 중학생이던 시절, 운동화를 신고 등교하다 교문에서 붙잡힌 여학생의 항의 장면 중에서)
Case 4. 어느 이른 아침 골목에서 일진은 바바리맨과 마주쳤고 일진 뒤에 숨어 있던 넷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준비한 빨랫줄과 허리띠로 바바리맨을 묶어 근처 파출소로 끌고 갔다. (학교에 자주 출몰하는 바바리맨을 직접 해결했던 일진 언니들의 활약 장면 중에서)
Case 5. "학생! 학생! 이거 두고 내렸어요." (깊은 밤 집에 오는 길, 안면이 있는 남학생에게 공포스러운 추격을 당하던 지영을 구해준 여대생의 활약 장면 중에서)
Case 6. "죽집도 내가 하자고 했고, 아파트도 내가 샀어. 애들은 자들이 알아서 잘 큰 거고. 당신 인생 이 정도면 성공한 거 맞는데. 그거 다 당신 공 아니니까 나랑 애들한테 잘하셔. 술 냄새나니까 오늘은 거실에서 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가족을 위기 속에서 구해냈던 지영 어머님의 활약 장면 중에서)
어떠세요? 적지 않은 수의 영웅들이 그녀의 곁에 있었다는 걸 느끼셨나요? 그들의 활약상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나 자신의 문제로 혹은 우리들 모두의 문제로 마음이 무너졌던 순간, 가장 먼저 자신으로 부터의 혁명을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나로부터의 혁명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출구를 찾을 수 없더라도, 한꺼번에 모두가 변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나로부터의 혁명은 아름답습니다. 나의 첫 시도와 그다음 시도, 우리의 첫 시도와 그다음 시도가 쌓여 근본적인 변화를 향해 분명 조금씩 전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마음이 무너지는 시련이 찾아왔을 때, 눈물을 왈칵 쏟기 전에 나로부터의 혁명을 시도해 보십시오. 그게 어렵다면 눈물을 왈칵 쏟고 나서라도 좋습니다. 혼자가 어렵다면 함께여도 좋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가장 강력한 시도이며 동시에 스스로에게 가장 필요한 보호자가 되어주는 길입니다. 지금 보다 더 젊었던 시절. 우리는 더 꿈꾸고 더 소망하고 더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순응하는 존재로 타협하는 존재로 향하고 있는 것이지요.
역사의 진보는 필녀들의 몫입니다. 변화가 필요한 지점에 섰을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 끊임없이 나로부터의 혁명을 실천한 필녀들로 인해 과거의 필녀들이 상상도 못 하였던 진보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처럼. 환경을 탓하고 주변을 이유 삼는 필녀가 아닌 나로부터의 혁명을 시작하는 필녀가 되십시오. 처음엔 망설여지더라도 당신이기에 결국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그 길에서 혹여나 '내가 먼저 변하면서 잃게 되는 것' 들로 망설이지 말길 바랍니다. '세상이 당신을 끌고 가는 대로 두는 것으로 당신이 잃게 되는 것' 이 훨씬 많으니까요.
웨스민스터대성당 지하묘지에 묻힌 어느 주교의 묘비 문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