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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과 이유 Jun 08. 2020

어린이날 케이크를 어린이날에 못 먹어서 사무치다

어버이날을 못 기다리신 아버지

아이가 어린이날 케이크를 사달라고 한다. 오레오 과자와 생크림이 어우러진 케이크인데, 크리스마스 때부터 먹고 싶었다고 한다. 어린이날 케이크를 사면 우리만 먹으니깐 어버이날 케이크를 사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먹자고 설득했다. 아이는 유리창에 비친 케이크의 그림자를 아쉬운 눈으로 쳐다보며 며칠 뒤를 기약한다. 아이의 눈과 마음은 여전히 케이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간식으로 먹을 빵을 사서 가방에 넣은 후에 아이와 손을 흔들며 집에 돌아왔다. 케이크를 먹지 못해도 괜찮다. 내일은 어린이날이니깐. 어린이날을 맞은 어린이의 소원이 소박하다. 


“엄마, 하루 종일 편안하게 쉬면서 놀고 싶어요.” 


EBS 방송을 보라는 잔소리도 듣지 않고, 그 날의 과제를 하라는 하라는 압박감도 없이, 엄마가 일을 한다고 조용히 하라는 잔소리도 듣지 않으면서 집에서 편안하게 있고 싶은 게 아이의 소원이다. 


“할아버지께서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오늘은 어린이날이니깐 며칠만 참았다가 어버이날에 가자.” 


어린이날의 주인공은 어린이니깐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어린이날 다음 날, 긴 연휴 끝에 밀려 있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분주하게 하루를 보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음 날의 일을 준비하며, 노트북 화면을 쳐다보며 뭔가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 올 일은 별로 없는데, 스마트폰 화면에는 동생의 이름이 깜박이고 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가 숨을 못 쉬신다고 전한다. 앰뷸런스가 오고 있다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아버지께서는 당뇨병도 있으셔서 단 것을 드시면 안 된다. 케이크는 가족이 둘러앉아 초에 불을 붙이고, 노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도구이지, 아버지께서 드시고 싶은 음식은 아니다. 


아버지는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를 모아 손주들에게 용돈을 주고 싶은 마음에 손주들을 어린이날에 부르신 거였다. 어린이날 케이크든 어버이날 케이크든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었는데, 손주들을 보고 싶어하시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이해하지 못한 채 어버이날로 가족 만남을 연기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실제로 아버지는 손주들에게 줄 용돈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두고 계셨다. 


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시던 시절에는 돈이 귀한 줄 모르셨지만 사업이 망하고 어렵게 노년을 보낸 시기에는 천 원 한 장, 만 원 한 장도 아껴가며 모아두셨기에 손주들에게 주신다는 그 용돈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있었다. 잘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로 힘겹게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여 다른 사람의 물건을 건네주고 받은 몇 천원이 모여서 하나의 만 원짜리 한 장이 된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노년에 지하철 택배 일을 하셨다. 화려했던 젊은 날의 기억은 묻어두신 채 하루 생활비라도 버시겠다면서 하신 일이었다. 지하철이 얼마나 공기가 안 좋은가? 올해 1월달에 쓰러지셨을 때 담당 의사는 폐 사진을 보면서 “이런 폐 사진은 처음 본다.”고 했다. 이미 폐는 전체적으로 하얗게 변해 버렸고, 폐 기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런 몸으로 여태까지 일을 하신 거였다. 게다가 심장도 안 좋으셨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아버지는 몇 건의 일 처리 연락을 받으셨다고 한다. 일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버지 병세를 모르기에 일을 맡겼던 거다. 병원 입원을 앞두고 절대 안정을 취해야 되는 시기임에도 손주들에게 어린이날 용돈을 주시겠다면서 몇 건의 일 처리를 하고 오셨다. 수수료로 받은 돈은 아버지 주머니에 꼬깃꼬깃하게 보관되어 있었고, 손주들의 손에 쥐어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이날 용돈은 손주들에게 쥐어지지 못했고, 어린이날 케이크는 잘라지지 못했다. 아버지는 어버이날을 기다리지 못 하셨다. 어린이날 케이크를 어린이날에 먹으러 갔더라면, 아버지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병원에 바로 모시고 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사무친다. 누구나 지난 날 하지 못했던 일은 후회로 남겠지만 2020년의 어린이날 케이크는 평생 마음에 사무칠 것 같다. 


“할아버지랑 오레오 케이크 같이 먹고 싶었는데, 이제 같이 못 먹는 거예요?” 


아이의 질문에 눈물을 삼키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오는 길이 참 멀었다.  


힘들게 사셨던 아버지의 노년과 마지막 일 처리를 하기 위해 힘겹게 발걸음을 떼셨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찌해서 아이들의 어린이날 소원을 먼저 들어주었던가? 아니다. 어린이날 케이크를 먹고 싶다던 아이의 마음을 그대로 들어주었더라면 마지막 아버지의 모습을 뵐 수라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후회로 하루 하루 가슴을 치고 있다. 아버지께서 챙겨 주신 용돈을 받으러 어린이날 케이크를 들고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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