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업 듣고 싶지만 고기도 구워야 해

기름 냄새와 김치 냄새 속에서 듣는 글쓰기 수업

by 시선과 이유

기말고사 시간이다. 월요일 중3 수업이 9시에 끝난다. 문제는 나도 9시에 글쓰기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거다. 게다가 9시에 집에 와서 아이들 저녁도 챙겨줘야 한다.



어제는 9시 10분에 수업이 끝났다. 인사도 빠르게, 문 열고 나오자마자 종종걸음으로 집에 왔다. 현관문 여는 순간 조리 타이머를 켰다. 냉장고 문 열자마자 목살 꺼내 프라이팬에 고기부터 올렸다. 가방 내던지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다. 두 손과 발이 초단위로 움직였다. 프라이팬이 달궈지기 전에 고기부터 올렸다. 맨 손으로 고기 집어 올렸다. 목살의 냉기와 뻣뻣함, 기름이 손끝에 닿았다. 집게는 없다.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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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덕션 온도를 터보로 맞췄다. 금장 지지직 소리가 났다. 소리가 초침처럼 재촉했다. 최대한 빨리 고기 굽기 신공을 발휘할 때다. 한 번 뒤집고 쌈장 꺼내서 식탁에 툭. 또 한 번 뒤집고 오이를 도마 위에 탁탁.



칼질 소리와 프라이팬 굽는 소리. 집안에 기름 냄새와 저녁 준비하는 냄새가 가득 퍼졌다.



입에 침이 바짝 말랐다. 늦게 들어간다 해서 뭐라 하는 사람 없지만, 글쓰기 수업이라 놓치고 싶지 않아 마음이 급했다. 양손으로 고기 뒤집는다. 5분 안에 다 구워야겠다 목표 세웠다. 기름냄새가 확 퍼졌다. 배가 고픈 냄새다. 가위로 듬성듬성 고기 먼저 잘랐다. 잘라놔야 빠르게 뒤적뒤적일 수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고르게 익히려고 젓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옆에는 냄비 올렸다. 고기 다 굽고 김치 구울 시간 없어서 동시에 김치 볶았다. 목살 위에 김치 올려 먹으면 더 잘 먹을 테니. 지직 소리가 들리기 전부터 고기 뒤집고 김치 휘저었다. 아이들 저녁 차려주고, 수업 들어가는 게 목표다.



프라이팬 내려놓고 테이블 위 그릇에 고기 담고 김치 얹고, 열무김치도 꺼냈다. 식탁에 아이들 밥 챙겨 두고, 노트북 켰다. 심호흡하고 글쓰기 수업 입장. 이미 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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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굽고 김치 굽고 밥 차리고 글쓰기 수업에 입장하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아이들 밥도 챙겨야 하고, 글쓰기 수업도 놓칠 수 없다. 두 가지의 삶을 안고 가야 한다. 분주한 저녁 루틴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고 희생도 아니다. 그저 나답게 살기 위해 계속 쓰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기름 냄새와 김치 냄새가 글쓰기 사부님의 목소리와 함께 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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