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와 본캐 사이, 글로 만나는 나
글을 쓰며 자아를 발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혼자 사색하는 시간을 만들기조차 어려울 겁니다. 잠시라도 혼자 있을라치면 스마트폰을 들고 뭔가를 찾아보거나, 이메일을 확인하게 되거든요. 일을 하거나 카카오톡을 확인하기도 하고, 이도 저도 아니면 음악을 듣기도 합니다.
명상이나 사색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사색을 한다는 건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일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 못하고 자꾸 뭔가를 하려고 들더군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차분하게 앉아 생각하는 게 필요한데 말이지요. 글 쓰는 걸 넘어서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바라는 건 뭐였는지 생각해 보고 잘살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하는 나, 가정에서의 나, 친구들과 있을 때의 나도 나이지만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부캐를 만들어 좀 더 나를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일을 하거나 가족들과 대화를 할 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할 때 많았거든요. 그럴 때마다 글 쓰는 사람이라는 부캐가 되어 글을 썼습니다. 일기를 쓴 것이지요.
두 번째 책을 출간하고 10만 유튜브를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목소리가 떨렸고, 눈을 자주 깜박였습니다. 말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힘겹게 촬영을 했고, 영상이 올라갔을 때 혹시라도 좋지 않은 댓글을 받을까 봐 또는 상처받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좋지 않은 댓글은 없었고, 편집을 잘해주어 매끄럽게 영상이 만들어졌습니다. 힘들어했던 나에게 스스로 위로를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250명 앞에서 글쓰기 강의를 했습니다. 과연 할 수 있을지 망설이는 모습을 이겨내고자 또 일기를 썼습니다. 글을 쓰니 부캐가 나에게 시도해도 되고, 실패해도 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한 번 해 보는 거지. 조금 못하면 어때. 다 경험이 되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는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회의에서 의견을 말해야 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여러 번의 연습과 망설임이 필요했습니다. 잘못 말해 실수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러나 보니 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곤 했지요. 혼자 책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건 편하지만 앞에 나서는 건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이런 내가 팀장이라는 직책을 7~8년이나 맡았었으니 수고 많이 했네요.
지금은 퇴사하고 아이들 가르치며 글쓰기 강의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내향인이지만 글 쓰고 강의하는 순간만큼은 용기 있는 내가 되고 있습니다. 글 써 보니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 시선 그리 의식하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관심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내가 다가가면 그들도 다가옵니다. 글 쓰기 시작하니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고, 본래의 나도 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부캐와 본캐의 경계는 느슨합니다. 살다 보면 앞으로도 두려워할만한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때도 부캐의 용기가 나를 감싸주기를 바랍니다. 그럴 거라고 믿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