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사는 게 더 익숙한데

내향인의 글쓰기

by 시선과 이유

조용히 사는 게 익숙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보다 혼자 책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편했습니다. 이런 제가 사람들 앞에서 글쓰기 수업을 하고, 독서 교실에서 아이들 글쓰기를 지도합니다. 시끌벅적한 수업을 할 때는 목소리가 올라갑니다. 강의를 하거나 수업을 하는 모습은 예전의 내가 본다면 의아해할 모습입니다. 강의나 수업을 할 때의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나는 다른 모습입니다. 내향인은 혼자일 때와 일을 할 때 다른 모습이 되곤 합니다.


글을 쓰는 건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내향인에게 글쓰기는 혼자서 써야 하는 일에서 누군가와 나누고, 공개되는 글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간극이 생겼습니다. 조용히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내향인이 공개된 목소리를 내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내향인의 글쓰기는 누군가의 평가를 의식하기 시작하면 막혀 버립니다. 부담을 내려놓았습니다. 수업에서 아이들이 투덜거리던 목소리는 내 목소리와 닮았다고 느껴집니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고, 누구 때문에 힘들다는 불평이 계속 이어지거든요. 아이들이 내뱉는 불평불만을 글감으로 삼아보자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일상이 글이 되면서 의미를 얻게 되더군요. 글을 쓰는 동안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긍정적으로 대할 수 있었습니다. 내향인의 글쓰기는 부담을 내려놓는 상태에서 마음을 잡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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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고등 시절 백일장에서 상을 받은 적은 없으나 일기를 썼습니다. 끄적거리는 걸 좋아하고, 편지를 자주 썼던 것 같습니다. 방 책장에 세계 문학 전집과 위인전을 읽으며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에 사연을 보냈습니다. 보내지 못한 글이 더 많았지만 한두 개 보낸 내용이 뽑혀 방송에 나왔을 때 다음날 학교에 가서 자랑하곤 했습니다. 조용한 제가 뭔가를 말할 수 있는 수단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스무 살이 되어서는 오히려 글쓰기를 멈추었던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쌓여갔지만 조용히 사는 데 더 익숙해졌거든요. 마흔을 넘기며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향인의 글쓰기는 조용합니다. 그저 감정을 기록합니다.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합니다. 조용히 사는 게 더 익숙한 조이지만 글로써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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