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에 머무는 사람일까?
얼마 전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로 독서모임을 했습니다. 올해 초 한 번 읽었으나 같은 책을 다시 읽는 기분은 사뭇 달랐습니다. 전체 줄거리를 알고 있음에도 문장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한강 작가님은 어떻게 이런 문장들을 썼을까요?
책 속에서 오래 머무른 문장이 있습니다. 동호의 어머님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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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겨울이 지나간 게 봄이 오드마는. 봄이 오먼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면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
삭신이 얼 정도의 고통은 어느 정도일까요?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글 쓰지 않으면 삭신이 어는 정도의 고통, 언 심장이 차가워질 정도의 고통이 느껴지려면 어느 정도의 마음이어야 할까요?
몸이 시리다, 가슴이 저리다라는 표현은 자주 해도 뼈와 심장이 얼어붙는다는 건 어떤 고통일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정체성이라는 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일 겁니다. 글을 쓰면 글이 정체성의 표현 수단이 되는 겁니다. 글을 쓸수록 정체성이 쌓이게 되고, 글을 쓰지 않는다면 정체성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취향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요?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에 대해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문장에 밑줄을 긋는지, 어떤 장면에 오래 머무르는지가 취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취향이 쌓여 정체성이 될 겁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취향과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책을 읽으며 어떤 글에 오래 붙잡히는지 살펴볼 것이고, 글로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려 합니다.
뼈와 심장이 얼어붙는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글 쓰지 않으면 얼어 붙을 것 같은 마음, 이런게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까지는 못 할 것 같아요. 한 줄 문장을 기록하며 나를 드러내는 일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