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높아지는 건 맞나?

완벽하지 않아도 자존감은 자란다

by 시선과 이유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면 자주 막힙니다. 책을 덮으며 이해했다고 생각한 날도 정리해 보려고 하면 뭐가 기억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먼저 튀어나올 때 많습니다.



얼마 전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두 번째 읽는 것이었지만 의미와 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독서 노트에 문장 세 개를 적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독서력은 어떻게 하면 빨리 늘까요? 책 읽고 자기계발하며 자존감이 높아지는 건 맞을까요?



생각글방 책쓰기 클래스 수강생분들과 《소년이 온다》독서모임을 했습니다. 제가 이해한 만큼만 알려드렸습니다. 수강생분들도 문장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잘 모르겠다고 느끼는 건 성장의 증거일 겁니다. 함께 독서노트를 썼고, 나머지도 완독하기로 했습니다. 독서력은 한 번에 늘지 않습니다. 이해했다고 착각한 것을 다시 살펴보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글로 옮기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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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비슷한 경험을 종종 합니다. 책을 읽고 흥미를 보이던 아이들이 질문을 하면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배경 지식이 없는 것도 아니었어요. 책 표지를 보고 재미있겠다 말하고 무슨 내용이냐며 질문도 했던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왜 책 다 읽고 이야기만 하려고 하면 모르겠다고 하는 할까요?



모르겠다는 건 아직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또는 틀릴까 봐 두려운 마음일 수 있습니다. 잘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모르겠다는 말로 바뀌어 나오는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할 때나 글쓰기 수업에서 또는 가족들과 대화하면서도 분명 이해한 것 같은데 말하려고 하면 자신이 없어 모르겠다고 말한 적 많습니다. 완전히 몰라서가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서 그렇겠지요.



지식을 많이 쌓고 똑똑하게 대답할수록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생각했던 적 있습니다. 하지만 지식이 많다고 해서 자존감이 높은 건 아닐 겁니다.



아이들과 수업할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풍력 에너지 모르겠다고 말하더라고요. 강원도에서 풍력 발전기 본 적 있느냐고 묻자 그때부터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던 적 있습니다. 자존감은 경험과 감정을 연결해 표현할 때 자라는 것 같습니다. 본 경험, 느낀 경험이 있으니 감정이 실렸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거겠지요. 아이들도 재잘재잘 떠들었을 때는 완벽히 알아서 그런 게 아니라 말할 거리가 있을 때였습니다.



글쓰기도 같은 원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려다 머뭇머뭇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고, 자기가 쓴 글이 별로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도서 서평이라는 글쓰기를 할 때 지식을 나열하는 게 아니다. 책 속 내용을 다 요약하지 못해도 책을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만 적으면 됩니다. 《소년이 온다》를 다 이해하지 못했어도 한 문장을 뽑고, 문장에 대해 느낀 걸 쓰면 되는 겁니다. 서평을 쓰면서 문장력을 따지고, 통찰력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책 내용을 다는 모르겠다고 인정하는 게 낫다. 그러고 나서 기억에 남는 문장 하나를 찾고, 문장에 대한 경험을 연결할 수 있으면 책을 읽고 남는 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책을 읽으면 자존감이 단단해질 것 같다. 책을 읽고 배경지식을 채운다고 해서 자존감이 자라는 게 아니었다. 문장 하나라도 경험과 연결시키는 일부터 시작하는 거였다.



예전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이게 잘한 게 맞는지,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다고 종종 말하곤 했습니다다. 이제는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고 한 문장이라도 이해하면 되는 거 아닐까 싶습니다. 전체를 다 알 수는 없더라도 하나라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면 자존감이 자라날 거라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책 한 권의 한 줄 문장을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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