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엄마란 #아이에겐 내가 위인전
내가 생각하는 '멋진' 사람이 무엇인지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후회하기도 하고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했던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멋진 엄마로 사는 것인지
멋진 엄마 되기를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아빠라면 좀 서운하실 듯하다.
엄마들에게는 엄마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연대할 수 있는 어떤 끈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낳든 마음으로 낳든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면 말이다.
엄마가 되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나서 딸들은 그제야 생각한다. 나의 엄마를.
내 삶을 통틀어 아마도 내가 가장 닮은 여성일 나의 엄마는 떼어낼 수 없는 그림자같이 느껴진다.
내가 나이가 들면 저 자리에 나도 주름이 생길까?
살이 붙고 무릎이 아파지며, 마흔 너머에 선 딸에게 여전히 하실 잔소리가 남아있을까? (아, 나는 잔소리할 아들만 있구나...)
아이들이 무심코 한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상처를 받을 때면 또 생각한다. 나도 그랬었지, 엄마한테.
나의 중학교 시절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책을 주워 삼키던 때였다.
어떤 책엔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던 말을 본 것 같다.
나도 이 말을 내 엄마에게 했던가?
"넌 엄마처럼 살지 마"라는 말을 엄마에게 나는 들었던가?
기억이 퇴색되고 왜곡되어 모르겠다.
에이, 설마 내가 엄마한테 그랬겠어? 싶으면서도 반항기 가득했던 그 시절의 나는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갑자기 마음이 아파진다.
엄마가 되어,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니 농담으로라도 그 말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엄마에게도 내게도 그건 부정이다.
나는 엄마보다 더 좋은 교육을 받았고 더 많은 세상을 경험했다.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
아마 엄마의 시대와 나의 시대가 달라 그랬을 거다.
거기에 엄마의 의지가 쌓여 내 어린 삶이 만들어졌다.
엄마는 엄마처럼 살아서 나 같은 딸을 키워내셨다.
나는 엄마가 엄마처럼 살아서 남긴 증거 같은 존재다.
나의 엄마는 늘 꿈꾸는 분이다.
나로부터 내 주변의 공동체가, 거기서 더 나아가 사회를 바꿀 꿈을 꾸고 계신다.
어릴 땐 그냥 그런가 보다 듣기만 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참으로 장대한 꿈이다.
나도 이제 컸다고 자꾸 거기에 잔소리를 얹고 싶어 진다.
아니 그걸 이루려면 당장 눈에 보이는 뭐 하나 시작해야 하지 않냐고, 엄마는 너무 이상주의자 같다고 타박하면, 뭔가를 하고 계시단다.
생각해 보면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엄마의 계획과 꿈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점점 더 살이 붙어나가고 있다.
꿈꾸는 유전자가 존재한다면 나는 딱 그걸 엄마로부터 물려받았을 거다.
나는 나의 몽상가적인 이상과 독특한 관점에 자부심을 느낀다.
나도 엄마처럼 아직 이루지 못한, 언젠가는 이룰 거라고 믿는 꿈을 여럿 꾸며 산다.
아마도 누군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다면 내가 엄마에게 했던 그 잔소리를 똑같이 할지 모르겠다.
엄마를 닮아, 엄마처럼 살고 있어 다행이다.
그래서 내 삶의 목표를 쓰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쓸 것이다.
"아이들이 닮고 싶은 삶을 살자".
실제로 매년 몇 페이지 쓰다 마는 다이어리 맨 앞장에 그렇게 쓰곤 했다.
다이어리의 세세한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또 조정해 가며 사는 것은 내게 퍽 어려운 일이다.
다만 내 인생의 저편 끝에 다다를 때엔 아이들이 닮고 싶은 인생을 살아왔길 바란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멋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무언가를 선택할 매 순간, 내뱉는 말 한마디, 손길 하나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자신은 없다. 당장 내 감정에 치우쳐 버럭 화를 내는, 아들 둘 둔 흔한 엄마 같은 태도만 해도 잠든 아이들 모습을 바라보며 후회하곤 하는데......
어쩌면 늘 강직하고 바른 길만 걷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내게 이득이 되는 선택을 우리를 위한 거야, 내 가족을 위한 거야, 다들 그렇게 살잖아? 하는 합리화로 묻어버린 일이 있었을지도.
약간 때는 묻었어도 그래서 때론 이불킥에 몸부림치는 밤이 있더라도, 중요하고 결정적 순간엔 제대로 된 선택을 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믿음을 부모님께 줄 수 있는, 부모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딸.
그래서 아이들이 닮아가고 싶은 그런 멋진 엄마!
나 때는 어릴 적 위인전을 많이 읽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좀 다른 것 같다.
우리 때보다 위인의 범주가 더 넓어진 것도 같고, 위인전이라고 60권, 100권 전집으로 사서 마르고 닳도록 읽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알고 싶은 유명인의 전기(만화?)를 골라 읽는 것이 트렌드 같다.
위인들의 어린 시절 또한 좀 더 현실적으로 묘사된 느낌이다. (음, 이건 어른의 눈으로 보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위인전의 허들이 좀 낮아졌다는 사실!
원래 어릴 땐 엄마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사람이 아닌가?
뛰어나고 위대한 사람. 위인에 대한 굉장히 주관적이고 자의적일 수 있는 정의.
따라서 내 인생은 아이들에게 또 한 명의 위인전일지도 모른다.
둘째 아이가 지나가는 말로 이런 말을 했었다.
자기도 손흥민, 음바페, 박지성, 메시처럼 Who 시리즈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일단 나부터 아이들의 위인전이 되어보자.
진정으로 성공한 삶이었다 뿌듯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