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좋아했고, 무리를 이루기를 좋아했다. 무리에 속하면 언제나 술과 함께였다. 나는 술이 없었다면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나서 술을 끊었다.
"오늘 술 한 잔 콜?"이라는 문자가 오면
"미안 오늘 일이 좀 바쁘네"라는 답장을 했다.
"아 오버야 빼지 말고"
"빼는 게 아니라 정말 바빠"
"너무하네 실망이다"
내가 바쁜 게 실망할 거까지인가? 한국 사회에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상대에게 실망감을 준다. 아! 물론 나도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했던 친구에게 실망이라고 말해본 경험이 있다. 술을 끊고 나니 자연스레 주변에 있는 사람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떠난 게 아니라 내가 그 무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자발적으로 소외된 나는 외로움을 느꼈다.
소외된 삶도 나름 매력이 있더라. 술을 마시지 않는 친구들이 늘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즐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술이 없으면 대화를 힘들어했던 스타일이라 그들의 대화 방식을 열심히 배웠다.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신 것처럼 즐겁게 얘기를 하더라.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코올이 없는 자리를 찾게 되었다.
사실 알코올에 쩌들어 나눴던 내용이 기억에 없다. 술이 나를 신나게 했던 건지 아니면 그들과의 만남이 신났던 둘 다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머릿속에 남은 좋은 이야기가 없는 걸 보면 영양가가 없었던 걸까? 이런 생각을 떠오로는 나는 참 냉혹한 사람인 듯하기도 하다. 처음에는 술을 멀리할 때 친구를 잃을 줄 알았다.
주변에서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말할 때 제일 자주 쓰는 말은 나 요즘 한약 먹어였다. 그다음으로는 장이 안 좋아 또 그다음으로는 이유 없는 금주. 가장 마지막 이유를 말할 때면 모두 다 하나 같이 실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나는 몇 번은 실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관계가 지속되지는 않을까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 그러다 한 두 번 여러 핑계를 개발했고, 핑계가 반복되니 자연스레 원치 않는 것과 멀어지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럴 때 보면 남녀 사이에만 이별이 필요한 건 아닌 듯하다. 맺고 끊음이 자연스러워질수록 새삼 나이가 들었다는 게 느껴진다. 모든 사람을 내 주변에 두고 싶었던 20대와 다르게 30대인 지금은 내게 가장 잘 맞는 사람들만 남기려 한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가 분명하기에. 술은 끊지 않았다. 잠시 쉬는 중이다. 때때로 아니, 자주 술을 마시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시간이 내게 큰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맥주병을 무한히 열어도 될 만큼 여유가 생길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