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기계 숨결 속에서
제1장. 「살기 위해 숨 쉬는 도시」
Part 1 – 잿빛 기계 숨결 속에서
나는 이윤이다.
그러나 여기선 이름 따위는 아무 의미 없다.
모두가 감정을 잊고, 감각을 말소한 채 살아간다.
살아간다기보단, 연명한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태양은 뜨지 않는다.
2100년, 메타도시 하층 생존 구역.
위성의 인공 태양판이 내뿜는 푸르스름한 광선만이 빛이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잔재다. 그마저도 이 도시의 하층부엔 닿지 않는다. 이곳의 ‘빛’은 누렇게 변색된 필터를 통과한 광분자 패널 속 허위의 색감일 뿐. 바닥엔 탄소 먼지가 눌어붙어 있고, 폐기된 구형 감정조절 칩과 말라버린 생체포자가 녹아들어 있다.
나는 이곳, ‘생체정원’이라 불리는 구조물에서 생존 허가를 받았다. 정원이라 부르지만, 그곳에 생명이란 없다. 작동 오류로 발아하지 못한 인조잎이 금속 막 위에 떠 있고, 공기 정화 장치는 가끔씩 기침처럼 분진을 뿜는다. 그 안에서 나는 숨을 쉰다. 아니, 쉰다고 ‘등록’된 호흡 행위를 반복한다.
내 피부는 감각을 잃었다.
의수화된 손끝은 타인의 온기를 분간하지 못하고,
귀는 무의미한 송신음과 신호 간섭 속에서 살아 있다.
‘동조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얼굴이 아니라,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다.
감정은 범죄다.
슬픔은 장애로, 기쁨은 통제되지 않는 변수로 간주된다.
이곳에선 ‘무표정한 일관성’만이 효율성과 신뢰의 증표다.
나는 매일 아침 생체정원 중앙에 서서, 폐쇄형 정맥 센서에 손을 대고 출근 허가를 받는다.
혈류와 정체성, 감정 동요 수치까지 기록되며 “안정 상태”라는 판정이 내려진다.
안정이란 말이 웃기게 들린다.
이런 곳에선, 차라리 혼란이 감각의 회복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끔… 아주 가끔,
의식도 감정도 없는 듯한 무채색 일상 속에서,
무언가가 내 안쪽에서 ‘두드린다’는 감각을 느낀다.
심장이 아니라, 더 깊은 곳.
정맥보다, 신경보다, 더 오래된 어떤 기억의 파동처럼.
내가 그 감각을 의식하면, 시스템은 경고음을 울리고, 동조 마스크가 자동으로 표정을 감지한다.
그러면 다시 무표정이 된다.
살아 있는 기계. 스스로 그렇게 규정된 존재.
그리고 나는 그 감각이 불편하다.
하지만 동시에… 원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사치였다.
의문은 작업 효율을 저하시킨다고 한다.
질문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로 여겨진다.
아무도 묻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조차.
그러나, 내 안의 무언가는
언젠가부터 이 세계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정맥 센서에 손을 댄다.
이윤, 안정 상태. 감정지수: 0.005
‘감정 억제 장치: 정상 작동’
이라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눈치채지 못한 채,
그 미세한 이물감이 나를 ‘다른 층위’로 밀어 올리고 있음을 느낀다.
느끼고 싶다.
정말로, 느끼고 싶다.
살아 있다고, 뭔가 내 안에 존재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