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첫만남
인도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슬쩍 지나가는 타지마할의 아우라,
갠지스강에서의 신성한 의식, 휴게소에서의 코끼리와 코브라, 그리고 수많은 인구와 코로나...
언제나 인도를 그리는 이가 많지만, 그냥 눈쌀을 찌푸리고 포기하고마는 나라가 인도이기도 하다.
그런 인도를 나는 그냥 막연한 상상속에서만 만났을 뿐, 나와는 거리가 먼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출장으로 인도를 4번쯤 다녀오고나니,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내가 알던 인도와 미지의 인도, 그 중간 어딘가쯤에 내 마음을 안착시켰던 것 같다.
얼마가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인도를 잊고 지냈다.
가끔씩 TV나 뉴스에서 보는 모습으로 기억 속에서 멀어진 인도를 한번씩 끄집어 내곤했다.
아내가 추천한 엔도 슈샤쿠의 '깊은 강'이라는 책을 보고 나서 인도에서의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인도라는 곳을 가야 한다고요?
출장 지시를 받고 난 뒤부터 나는 잠을 못 이뤘다.
뭘 준비해야 하나, 라면은 먹을 수 있나, 이제는 구경도 못할 고기도 왕창 먹고 가야하나, 배앓이가 심하다던데 배탈약을 가지고 가야겠지? 모든게 생소하고 어려웠다. 더군다나 내가 가야 하는 인도의 도시는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에서는 직항이 없어, 홍콩에서 갈아타야만 갈 수 있었던 곳이었다.
직항으로 갈려면 항구도시로 유명한 뭄바이(폭탄테러가 났다는 그..)라는 도시를 반드시 거쳐야 해서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물론 훗날 뭄바이를 통해서 인도를 가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처음은 그랬다. 낯설고 배앓이 할 것 같은 걱정들이 난무했다.
무섭고 두렵고 모든게 낯선 이 미지의 세계로의 출장을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만 한 짐이었다.
그때까지는 그저 출장이라고는 중국, 베트남, 태국 등 비교적 안전하고 익숙했던 좋은 호텔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둘러싸인 출장이라 전혀 거리낌이 없었는데, 말로만 듣고 웃어넘기던 그 막연함의 나라 인도를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은 어두웠다.
'거기도 사람사는 곳인데 뭐 다른 일이 생길라고'라고 못내 걱정을 접어두려고 부던히도 노력했다.
다행히 출발 전에 동행자가 생겨 인도로의 여행은 외롭지 않을 것 같아 한편으로는 작은 안심이 되었다.
홍콩을 거쳐 인도로 가는 여행은 인도를 걱정하던 나에게 이상하리만큼 설레인 여행경로였다..
아마 그건 인도로 간다는 즐거움보다는 미식의 나라 홍콩에 대한 기대가 더 컸으리라 생각된다.
아내와 예전에 홍콩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오랜만에 방문이었다.
그때는 숙소도 좁았고 태풍도 몰아쳐 쇼핑몰도 빨리 문을 닫아 아쉬웠던 기억이 컸다.
잠시 트랜짓을 하면서 대기해야 하는 일정이라 우리는 급하게 홍콩 시내를 돌아보기 위해, 그 유명한 침사추이로 고속열차를 타고 내달렸다. 촌스럽다시피한 정장차림의 우리는 홍콩을 누비벼 사진을 찍어대면서 인도에 대한 걱정을 순간순간 지워나갔다.
그때의 홍콩은 짧았지만 그 다음 여정의 인도는 길었다.
티켓팅을 하는 순간부터가 인도 그 자체였다.
인도의 승무원들이 반기는 게이트에서부터 인도의 진한 향이 코를 찌른다.
멋드러지게 늘어뜨린 에어인디아의 승무원복장, 비록 약간의 의도하지 않은 노출이 있었지만 자연스러워 보이는 건 이미 익숙해진 탓이겠지했다. 분명히 나는 내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팔걸이가 없는 이상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왜 이 비행기에는 팔걸이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홍콩에서의 요란한 나들이 때문인지 고단함이 몰려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졸다가 자다가를 반복하는 시간이 지나고 잠시 식사시간이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카레와 치킨이 대부분이었고, 온 기내안에 꽉찬 카레 냄새는 자던 이를 흔들어깨웠다.
눈부신 은박지에 쌓인 기내식은 언제 내가 기내식을 원했냐는 듯이 배고픔을 싹 잊게 하였다.
원래 현지식을 즐겨먹는다고 자부하는 나도, 인도 기내식에 잠시나마 반성을 했었다.
이걸 먹지 못하면 아마 출장 내내 음식을 못먹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용기있게 은박지를 뜯어내고,
조심스레 입안에 하나씩 가져가 본다. 그러는 중, 옆사람이 화장실을 간다고 '쏘리'를 입에서 마구 흘려낸다.
바로 그때다.
갑자기 없어졌던 팔걸이를 찾게되었다. 그랬었다. 그 팔걸이를 팔걸이로 쓰지 않고 옆구리 걸이로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모세의 기적도 아니고, 없어졌던 팔걸이를 찾은 나는 너무 신기한 나머지 팔걸이를 감싸쥐었고, 화장실갔던 친구가 앉으려고 하기 전에 이미 내 팔을 단단히 걸쳐놓고 있었다.
그 옆구리가 내 팔을 덮는 느끼한 느낌을 잊을수는 없지만, 남은 4시간정도의 편안함을 확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이제 내리는가보다 생각하는 찰라, 이미 활주로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그렇게 델리공항에 도착해 2주 동안을 버티게 해 줄 캐리어를 찾아 밖으로 달리듯이 뛰쳐나왔다.
분명 기사가 우리를 데리러 오기로 했는데 하면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를 몇번 하다보니, 구름과 같은 택시기사의 무리들이 우리에게 호객행위를 하려고 붉은 눈을 부라린다.
왜 눈이 그렇게 빨간지는 몰랐지만, 그때의 그 눈은 너무나 우리를 겁먹게 했다.
델리공항을 힘겹게 빠져나와 인도의 들판을 달린다. 뿌연 안개들 사이로 집들과 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뭔가 찜찜하고 기분나쁜 이 안개는 도대체 정체가 뭘까라는 생각과 함께, 인도의 공기 오염에 대한 뉴스를 본 기억이 되살아 난다. 뭔가를 태우면서 나오는 연기가 안개인 듯 보여, 자칫하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전원의 낭만을 만끽할 뻔했다.
우리는 출장자들이 많이 묵는다는 한국인 게스트하우스에 2주간 묵게 된다.
한국식 식사, 냉장고마다 가득찬 무한리필 병맥주, 지하실의 노래방, 매일 무료인 세탁 서비스, 거기다 주말이면 어김없는 삼겹살파티까지 없는게 없는 인도에서의 안식처였다.
안이 훤히 보이는 게스트하우스 방하나를 받고 첫 저녁식사를 한다. 긴장을 했던 탓인지 식사를 하면서 마신 맥주탓인지 잠시 앉아 과일을 먹던 우리는 그새 침대로 향하고 있었다.
새벽에 잠시 깨어 밖으로 본 인도는, 집없는 개들이 무리지어 몰려다니며 집없는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무서운 동네다 여긴.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지만 뭔가 강렬한 것들이 하나씩 꽂히는 느낌이다.
출장 중 첫 주말을 맞이했다. 우리는 오늘 당연히 타지마할로 떠난다.
금요일 저녁, 맥주를 마시며 다음 날 떠날 타지마할에 대해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으로 부터 정보를 받아적었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우리의 도시로 부터 5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당일로 다녀오려면 새벽6시에 출발해서 밤 늦게 도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인도에 왔는데 타지마할은 당연히 가야 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에,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김밥과 커피, 과일들을 요청드리고는 적당한 취기에 잠이 들었다.
새벽부터 방 문을 흔드는 소리에 기계적으로 옷을 입고는 7인승 밴에 올라탔다. 가야 할 길이 멀기에 우리는 온 몸을 옷으로 둘둘 감고는 잠이 들었다. 휴게소에 도착하면 깨울테니 마음놓고 잠을 자라는 인도인 기사.
감사인사를 던지며 우리는 안전벨트를 다시 점검하고 손잡이를 꼭 잡은 뒤에야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