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이 없으면 변화는 없다.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고 다들 도전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도전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예전보다 더 과감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또, 나이가 들면 도전에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 도전보다는 안정적인 것을 찾게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되어 온 게 맞다.
20대에 맞는 도전, 30대에 맞는 도전이라는 건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만 유독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항상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고 한다.
약관, 불혹, 지천명 등은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나이에 깨닫게 되는 세상의 이치이지 나이에 맞게 모든 걸 자제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이란,
나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가족이 짊어져야 하는 몫이므로 두려워지는 것 같다.
그럼 도전을 염두에 두고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것일까.
먼저, 삶의 목표를 하루에 30분씩이라도 진중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자신의 목표가 월급많이 받아 저축하고, 집사고 투자해서 노후 걱정없이 사는게 된다면 도전을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퇴색된다. 도전보다는 안정적인 삶을 택한다고 생각하는거니까.
그렇다고, 꼭 도전을 해야 하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는 것도 맞다고 할 수 없다.
성공한 삶, 잘 살아온 삶, 앞으로 더 만족하는 삶이라는 건 결국 자신이 찾아야 하는 인생의 숙제이고,
그걸 찾아가는 과정에서 본인의 그동안 쌓아온 내공으로 그 길을 완성해 나가는 것 같다.
어떤 유투브채널을 보니 이런 말이 있더라.
삶의 목표는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이어야 한다.
출처. 유랑스유투브
나는 교사가 되겠다. 의사가 되겠다는 교사, 의사라는 명사를 염두에 두고 목표를 세운 것이다.
교사가 되고 의사가 된다면 삶의 목표를 다 이룬거라 생각하면 안된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 그런 사람들은 그게 자신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게 맞다.)
누구와 비교하는 것이 아닌 나는 그럼 어떻게 목표를 세우고 살아야 할까.
나는 어디서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이타적이고),
매일 성장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반드시 가족이 함께 하면서 작은 돈이라도 과하게 소비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바보같이 허비하는 것이 아닌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한다.
돈을 만듬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너무 두리뭉실한가?
사실 나도 그런 목표를 정확히 세운 건 아니지만,
명사형이 아닌 동사형으로 살아간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구체적인 목표는 명사형이라기 보다 정량적인 숫자로 표현해 놓았지만,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행동강령과 같은 것이라 보는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어떤 기회가 왔을 때, 그게 위에서 세운 동사형 목표에 맞춰 보고 행동하자는 의미다.
주는 돈을 수동적으로 받아서 저축하고 메달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노후를 준비하고,
기회가 왔을 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상황인지를 보고 결정하고,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확인하고 그렇다면 그렇게 행동하면 된다.
남을 배려하고 모든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한다.
이게 내가 내린 오늘의 작은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