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죽음에 대한 생각

by 유니버스

오늘은 현대지성에서 출간한 인문학 책을 하나 들고 왔다.

이반일리치의 죽음이라는 레프 톨스토이의 작품인데, 정말이지 추천하는 필수 고전이다.

좋은 기회가 생겨 좋은 작품을 한번 경험하게 되었다.

표지의 그림은 바보들의 배라는 네덜란드 작가의 작품인데,

이반일리치가 죽음을 맞이하고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전의 심리상태를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책에 대한 내용이 더 궁금해 지기 시작한다.

작가는 레프 톨스토이이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1886년에 단편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전쟁과 평가(1869), 안나카레리나(1978)가 만들어진 연도보다 늦게 완성이 되었다.

이 책에는 톨스토이가 죽음 주제로 하여 만든 작품이 '이반일리치의 죽음' 이외에도,

'주인과 일꾼', '세 죽음' 등이 같이 수록되어 있다.

톨스토이의 많은 작품(전쟁과 평화, 안나카레리나)에서 보듯이 죽음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표현하고 있다.

안나 카레리나를 읽어보면서 결국에는 목숨을 끊는 안나와 안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죽음,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반일리치의 죽음

첫 얘기는 이반일리치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전하면서 시작한다.

역시 첫 배경은 상테페테르 부르크, 페테르 부르크이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사랑한 페테르부르크)

Saint Peter’s berg(city) = 상테 페테르 부르크

성 피터스의 도시라는 뜻으로 기억된다.

이 죽음으로 인해 그의 주변사람들은 그저 승진소식이나 멀리 있다는 장례식장에 갈 걱정, 자신의 일정을 걱정하는 얘기들이 오간다.

너무나도 와닿는 인간들의 습성이 나오는 것은, 죽은 사람이 자산이 아니라는 점에서의 안도감이다.

이어, 글은 이반일리치의 시체가 있는 자택에서의 모습이 그려진다.

역시나 톨스토이의 그 디테일함이 뭍어나는 글들이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하다.

그러다, 그의 아내가 꺼내놓은 이반일리치의 마지막 죽음에 다다랐을 때의 모습을 설명한다.

"그이는 마지막 며칠동안 대단히 고통스러워했어요"

의식이 붙어있는 상태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법원의 위원이었던 이반일리치는 마흔 다섯살의 나이에 사망했다.

아버지가 페테르부르크에서 관리로 있으면서 있으나 마나한 한직에 있었지만, 그 덕에 첫째도, 그리고 이반일리치도 법학원에 갈 수 있었다.

그는 법학원에서 재능과 온화하면서도 사교적인 모습을 보였고, 평생 그 모습을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법학원을 마치고는 10등관(총 14등관 중) 관리로 임명되어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그는 나와 같이 혈기왕성하고 유흥을 좋아하면서도 업무에 임해서는 침착하고 사무적이었다.

이제 예심판사를 위해 옮긴 도시에서는 5등관의 직위를 가지고 유쾌함을 유지하고 살았으며,

그 도시에서 아내가 될 여자를 만나게 된다. 엄청난 부자는 아니지만 적당한 귀족가문에 재산도 적당히 있는 사랑스러운 여자라고 표현한다.

그렇게 결혼한 이반일리치와 아내에게서는 안좋은 일들이 일어난다.

아내는 이유없이 이반일리치를 질투하고 자기에게만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고, 트집과 무례로 대했다.

하지만 유쾌하게 넘겨버리고 살아가려고 한 이반에게 아내는 거칠고도 격렬한 욕을 계속 내뱉고, 자기 욕구를 채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다.

이런 아내를 벗어나기 위해 이반은 자기의 일에 더 몰두하게 된다.

이반 일리치는 결혼 후의 생활에 대해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서만 갖추도록 하고, 이외에 다른 것들로 부터 저항을 받아오게 되면, 어김없이 자신의 세계로 나가 즐거움을 찾았다.

그렇게 인정을 받으면서 부검사로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하지만, 가정생활은 편하지 않다.

하지만, 인정받던 직장에서 고배를 마시고 더이상 좋은 자리가 나지 않자, 좀 더 나은 연봉이나 조건을 위해 모험을 하기로 하고, 페테르부르크로 갔다가 좋은 기회를 얻게된다.

시골로 가면서 잃어버렸던 기회와 자신의 적들을 납작하게 해줄 좋은 자리를 얻어 가족이 도시로 옮겨오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고, 그곳에서의 행복한 생활로 인해 항상 유쾌하고 즐거웠다.

자신의 일마저도 허술하게 할 만큼 정신은 딴데 팔려있었고, 그런 모습은 완전히 인간적이다.

그렇게 좋은 날들이 이어지던 중, 이반 일리치에게는 병이 생기게 된다.

병을 앓게되면서 모든 것이 슬프게 보이고 침울해 보이는 것을 느끼게 되고, 가족과의 관계도 다시 소원해진다. 기력도 떨어지고 식욕도 떨어진다.

병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어 가고, 이반일리치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게 된다.

이때부터 죽음에 대해 더 심각하고 깊이있게 고민하게 된다.

고통으로 인해 자신의 업무에도 제대로 몰입하지 못하게 되자, 더욱 고통을 느낀다.

배설도 힘들어지고 음식도 역겹다. 단 세달만에 일어난 일들이다.

이반 일리치는 죽어가는 자신을 향해 사람들이 더 연민을 느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랬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고, 이반일리치도 울고 다독임을 구하는 대신 엄격함을 지키는 위선을 보였다.

삶과 죽음에 문턱에서 원망과 두려움, 배신감, 무자비함에 대해서 동시에 느끼고 있다.

살고 싶지만 살지못한다는 것을 아는 절망감. 살아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건가?

하인과, 아내와 딸, 의사를 통해 느낀 것은,

"그는 그들에게서 자신을, 자기가 살아온 모든 것을 보았다. 이 모든 것이 옳지않다는 것과 그리고 삶과 죽음을 모두 가려버리는 끔찍하고 거대한 기만이었음을 분명히 보았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의 순간에 다다랐을때, 아들과 아내에게 마음을 건내고, 울음을 보이는 아들과 아내에게 진심을 다해 얘기한다.

그리고, 숨을 들켰다 뱉는 도중에 멈추고, 몸을 쭉 뻗고 생을 마감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단순히 러시아 관리의 한 사람이 성장해 나가면서 느끼는 성취감과 희열, 가족과의 행복과 불화를 다루는 얘기인 것 같지만, 성공을 위해 가족에 대한 부족한 관심, 드러내지 못하는 행복감과 사랑에 대해, 그동안의 삶에 대한 부질없음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잔잔하게 알려준다.

가벼이 시작한 이 글이 다시금 가족과 나의 일에 대한 생각을 깊이 있게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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