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나비효과
여행을 하다보면 평소에 내가 했던 배려보다 훨씬 더 많은 배려를 받기도 하고,
내가 배려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여행이 만들어 준 배려에 대한 기회가 또 다른 배려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두 눈과 두 손으로 경험하고 나니,
비로소 나의 배려가 만들어내는 세상에서 내가 좀 더 리더가 되어야 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칭찬받아 마땅한 배려는 사실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모든 배려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칭찬보다 더 좋은 것이 다시 되돌려 받는 배려라는 것은 나만 알고 싶은 비밀같은 것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수많은 일들이 주변에서 생겨나고 또 스쳐간다.
그럴 때마다 내가 배려받거나 배려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어떻게 내가 결심을 하느냐에 따라 행동으로 이어져 멋진 결과를 만들어내곤 한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잘 없는 파리의 지하철, 그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일은 우리도 힘들지만 파리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벅차기는 마찬가지다.
하루는 지하철을 급하게 타려고 내려가는데 중년여성 한분이 캐리어를 힘겹게 끌다시피하면서 내려가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다가가, ‘May I help you?'를 던지고는 곧장 캐리어를 받아들고 내려갔다.
마지막 계단을 내려가 캐리어를 내려놓은 후 중년여성의 모습을 보니, 잇몸을 드러내는 미소와 함께, ‘Thank you very much'와 'Merci beaucoup'가 같이 돌아왔다.
하루는 유모차를 가지고 올라가는 한 아빠의 모습을 보고, 또 다시 유모차를 옮겨주고자 하였으나, 이 때에는 환한 미소와 함께, ’No, Thank you'가 돌아왔다.
이때까지는 내가 한 배려라는 것을 통해 나만 행복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었다.
한국보다 파리에서의 배려가 몇 배 더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니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과 이런 기회에 대한 감사함이 몰려왔던 것 같다.
이런 일들을 통해 내가 한 좋은 일들이 쌓이면 아마도 내가 아니더라도 나의 딸에게 더 좋은 일들이 더 생긴다면 몇 배가 되더라도 이런 일들을 찾아다니며 하고 싶은 심정이긴 하다. 바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몸에 밴 배려가 나의 딸에게도 배일 수 있게 함은 물론, 그런 배려들로 하여금 하루를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건 해본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배려의 나비효과가 나타나길 바라긴 하지만, 이런 힘든 세상에서 살면서 그런 것까지 바란다는 건 욕심인 것 같다.
이런 단순한 배려들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곤 한다.
스위스 바젤역에서 다른 기차를 타기 위해 내렸던 우리는 텍스리펀(Tax Refund)을 받고 나서 잠시 여유가 생겨 화장실에 들렀다.
독일에서와는 달리, 파리에 있는 내내 화장실을 어렵지 않게 사용했기 때문에 전혀 고민하지 않고 화장실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큰 캐리어 3개를 가지고 다니는 터라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아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기차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음도 같이 직감했다.
화장실 앞에 다가서자 코인만을 내고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게되었고, 유로 동전도 다 써버리고 스위스 프랑을 인출하지 않았던 우리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나는 ATM기가 있는지 알아보러 잠시 주변을 돌아다니던 그때, 화장실에서 나오던 어떤 젊은 남자가 곤란해하는 우리를 보고는 인원수에 맞게 프랑으로 된 코인을 건내주고 갔다. 너무나 급한 상황이었던 우리에게 그 4.5프랑은 너무나 천금같은 돈이었다. (4.5프랑이면 거의 7천원 정도 수준)
일단 감사한 마음은 뒤로 한 채, 급한 일을 처리한 뒤 기차에 올라타고는 그 감동이 다시 밀려왔다. 아내는 이 감사함이 당신의 배려와 선행 덕분에 다시 돌아온 역배려가 아닐까라고 유추해서 엮어본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이게 과연 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간단히 기억이 나는 정도의 에피소드만으로도 배려에 대한 따뜻한 사례들이 넘쳐나는 걸 보면, 아마도 더 많은 배려 교환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이 든다.
요즘 같이 험한 세상, 한국을 떠나고 싶은 생각도 많아지는 이때,
이런 배려들이 더 많은 외국의 사례들을 보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아직 우리는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도 과감히 인정해야 하고, 인정한 만큼 바뀌려고 노력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될지는 모르겠다.
바라고 싶지만 바래볼 수 없었던 배려의 나비효과를 믿어보면서, 다시금 좋은 기회가 생기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