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장남, 아빠, 오빠, 직장상사, 옆집 아저씨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비가오는 오늘도 출장을 떠난다.
지난주 토요일에 탔던 그 항공편을 타고, 같은 시간대에 서울에 도착한다.
요즘은 점점 기차예약하기도 어려워지고, 자리도 잘 나지 않는다.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예전에 알던 분을 만났는데, 왠지 나를 아는척하기 어려운 모양인지 모른 척을 한다. 나도 아는 척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모두가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하고 넘겨 버린다.
택시를 타고 미팅을 마치고 지하철을 왕창 타고 다시 공항에 도착해서 오설록카페에 앉아 케익과 밀크티를 하나 받아들고 공항 활주로가 훤히 보이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쓸데없는 미팅은 아니지만, 불필요한 미팅(같은 말인가? 같은 말이 아닌 줄 알고 써버렸네)을 하고나니 하루가 조금은 허탈한 느낌이다.
요즘은 자주 힘이 빠진다. 특히 가치없다 생각되는 미팅에 앉아서 얘기를 듣고 있다보면 내 자신이 초래한 강등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 이런 자리에 내가 앉아있는지, 왜 이런 자리를 자초했는지 모를 정도의 생각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가치없는 일이 있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가치가 더 큰 일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요즘들어 나이가 들어가는 걸 실감해서인지 시간의 가치를 좀 더 따지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평소 잘 먹지도 않는 달달한 밀크티와 달디단 케익을 한 웅큼 집어서 입에 우겨넣어본다. 옆에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지만, ‘여기선 다들 그래’라는 눈빛을 빠르게 주고받고는 다시 포크질에 한창이다. 그 사이에 비행기가 한대 도착하고, 비행기를 둘러싼 자동차와 사람들이 분주하다.
가치있다없다를 따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고 전문적으로 손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자신이 ‘배부른 돼지의 진주돌리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얘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잘 없다.지쳐쓰러져가면서도 자존심만은 버리지 못해서 억지 웃음을 짓곤 한다.
내가 사는 세상이 아직은 여유로움으로 둘러쌓여있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한없이 지쳐가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아보인다.
아마도 그렇지 않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보인다.
다시 케익을 한웅큼 입에 넣어본다. 단맛이 확느껴져 올라온다.
기분이란게 좋아지지만, 눈빛은 여전히 퀭하다. 옆자리는 여행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비가와서인지 다들 들뜬 분위기보다는 차분한 분위기다.
다시 비행기 한대가 비를 뚫고 하늘로 올라선다. 구름 뒤로 사라지고 난 뒤 또 다른 비행기가 활주로에 전력질주를 할 준비를 한다.
너무 많은 일이 나에게 가치를 줄 수 있을까, 가치있다고 착각을 주는 것일까.
정신없이 바쁨이 나에게는 오히려 약이 되는 걸까, 또 다시 알고 있는 병을 가져다 주는걸까.
망각의 동물인 나란 아이는, 그렇게도 힘들었던 과거를 다시금 그리워하면서 뭔가 이룰 수 있을거라는 착각을 또 해대고 있다.
활주로에 들어서 있는 나는 이제 멈출 수는 없다.
이제 전력으로 달리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고, 열심히 내달린다면 활주로를 떠나 하늘에 올라있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전력질주하지 않으면 그건 이제 포기한 삶이 되어 버린다.
활주로는 달리라고 있는 곳이지, 기다리는 곳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