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딸, 그 2편
딸이 중학생이 된 지 벌써 한달이 넘었다?
아직 한달 밖에 안되었는데 이렇게나 시간이 많이 흘러간 것 같은 건 무슨 현상의 일부지?
한달이 이렇게나 긴 적이 있었을까 다시 한번 내 인생의 뒤를 돌아본다. 없다. 없었다.
딸이 중학생이 된 이후로 벌써 월급을 몇 번이나 더 받은 착각을 하게 된다.
아마 그건 중학생 딸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3월이라는 달의 특별하고도 무거운 의미들이 많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3월이 되면 어느 때보다 호들갑이고, 3월 내에 끝내야 하는 것들도 너무 많다.
세금에, 투자에, 이사에, 모든 것이 3월에 몰려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영원한 귀염둥이, 예쁜 딸을 차에 태우고 학교에 데려다 주고는, 나는 지각한다.
일찍 나섰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오늘은 비가 와서 학교 앞에 모두 '딸 데려다 주는 아빠'들로 넘쳐난다.
비가 오면 신호등도 늦게 바뀌고, 끼어드는 차들도 많고, 도로도 왠지 거꾸로 가는 무빙워크가 된 마냥, 차가 그렇게 느리게 이동한다.
지각, 그것보다 중요한 건 딸의 등교니까라고 마음을 다스려보지만, 내일은 그러지 말아야지 다시 다짐도 한다. 아내는 딸의 '차를 탄 등교'보다 '걸어가는 등교'를 우선시하라고 하지만, 모든 아빠의 로망인 '차로 딸 학교에 데려다주기'를 실행하는 것이 나는 무엇보다도 즐겁다.
딸과 아내의 잔잔한 충돌은 조금씩 그 횟수를 더해가고 있다.
사춘기가 온 것 같은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조짐이 있는데 아니라고 하니 믿을 수 밖에...
항상 엄마와 다투고 나면, 아빠를 찾아 집안을 싹싹 뒤진다.
아빠를 찾게 되면 세상 반가운 듯 안고 뽀뽀하고 난리도 아니다.
이렇게 아빠를 좋아하는 아이였으면, 아빠가 부르면 제때 대답이라도 좀 하고, 아침에 깨우면 시늉이라도 하던가. 그래도 딸은 아마 아빠가 최고 다음으로 좋을 것이다.
이래뵈도 딸은 역시 엄마가 최고인 아이다. 이렇게 좋다가도, 엄마와 싸웠다고 하더라도, 항상 잠은 엄마와 자기를 간곡히 원하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자면서도, '오늘은 특별히 엄마와 자고 싶어요'라고 얘기하니 할 말 제대로 잃어버린 듯하다.
그런 딸이 유일하게 아빠를 진정으로 좋아할 때가 있다.
아빠가 아는 아이돌이랑 딸이 좋아하는 아이돌이랑 정확히 겹쳤을 때다.
물론 딸은 엄마의 성화에 아이돌을 좋아하는 걸 잘 표현하지는 못한다.
아이돌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듣는 것도 사실 우리 집 안에서는 눈치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중학생 딸은 아이돌을 몰래 들을 수 밖에 없다. 가끔씩은 친구와 얘기를 나눌 때도 있고, 정말 우상같이 예쁜 아이돌을 보면 그렇게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확히 맞아 떨어진 아이돌이 바로, 에스파와 아이브다.
뉴진스, 너무나 좋아하고, BTS도 너무나 좋아했지만, 지금은 에스파와 아이들이라는거다.
카리나와 윈터를 좋아하고, 원영과 유진을 넘어 이서와 레이를 아는 아빠를 보며 놀라 까무러친다.
아빠가 아이돌을 아는 것도 신기한데, 이름과 얼굴을 제대로 알고 있는게 중학생 딸에게는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나보다. 그냥 보면 예쁜 사람의 얼굴과 이름은 기억하는 나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이렇게 공감대를 만들어 낼 줄이야.
나 자신도 나의 능력에 탐복한 순간이었다.
이런 능력이 어린 딸과의 교감을 완성시켜주다니, 너무나 하느님께 감사할 일이다.
이런 아빠와 딸을 보면서 한심한 눈길을 한없이 퍼다나르는 아내는, 가끔씩 같이 춤을 추면서 깔깔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인정한다는 엄지손가락을 시전한다.
아이돌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나에게는 그런걸 잘 기억하는 천부적인 능력이 있고, 이 능력이 나의 소중한 딸과 함께 한때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난 사실, (여자)아이들도 알고, 르세라핌도 알고, 베이비몬스터까지 아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