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더 가방
헬싱키에 도착한 우리는 짐을 찾지 않아도 되었고, 베를린에서 가방을 찾기로 되어 있어,
가벼운 캐리어 하나랑 백팩을 달랑 메고, 헬싱키 반타 공항에 들어갔다.
헬싱키 반타 공항은 천정이 낮고, 뭔가 오래된 느낌의 공항이지만,
실내는 깔끔하고 북유럽의 어느 가구점과 비슷하게 미니멀하고 세련되었다.
순록박제를 본 딸은, 신기한 듯 털을 연신 쓰다듬다가 또래의 아이들이 다가오자,
순록을 차지하기라도 하는 듯 등을 보이면서 방어에 들어간다.
반타 공항에서 다시 베를린행 비행기 탑승까지는 3시간 대기..
공항을 어슬렁거리면서 기념품을 구경하고, 절대 살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고 먹을 것만 챙겼다.
맛있는 커피(탄냄새 작렬)와 샌드위치로 허기진 배를 조금이나마 달래고,
다시 출국장을 통해 베를린행 비행기를 탄다. 역시 핀에어다.
같은 핀에어지만 국제선이 아닌 로컬선같은 느낌.
매일 2편있는 베를린행은 2시간 정도 소요되어 여행의 기분을 느껴볼 시간도 없이,
모든 사람들이 거대한 짐들을 찾기 위한 사전 준비를 하는 듯 했다.
이제 베를린이다.
얼마나 같이 오고 싶었던 베를린이었던가.
작디 작은 베를린 테겔공항, 매번 IFA쇼(가전쇼)에 참석하기 위해 드나들었던 익숙한 곳이지만,
매번 올때마다 의문이 생긴다. 왜 이렇게 큰 독일의 수도 공항이 이렇게 작고 초라할까
공항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작고 뭐 살곳도 마땅히 없다.
예전에 베를린에서 아내의 가방을 사고, 공항에서 세금을 돌려받을때 (Tax Refund),
정말 시간도 많이 걸리고 복잡하고 찾기도 힘들었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 같아 겁이 났다.
자~ 이제 가방을 찾으러 갈까?
셋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개의 가방을 찾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3주동안의 여행이라 가방이 많았다. (새로산 이민가방, 출장용 가방, 작은 기내용 캐리어)
가방이 하나씩 나온다. 가방이 나오는 곳도 너무 작다.
하나, 둘, 둘, 둘..........
아빠, 가방이 이제 다 나왔는데? 더이상 없어~
우리만 그런게 아니다.
기다리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가방을 찾지 못했다.
사람들이 항의한다. 핀란드에서 가방을 다음 비행기에 넣어서 보낸 것 같은데, 난 잘 모르겠다고 한다.
내가 아는 핀란드와 독일이 맞나?
세계 복지 1위, 강대국 독일, 최첨단 시설과 기술의 독일.
저기요, 저희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연히 유창한 영어로.....헬로, 왓더
1층 분실물 센터에 접수하고 가서 기다리란다.
우리는 여행객이고 가방이 전부이고, 식량을 거기다 넣어왔단 말이야.
그 식량은 3주동안 핀란드에서까지 살아야 하는 식량, 옷이 전부 다 들어있는, 그것도 새로산 삼소나이트 가방이란 말이야 이것들아. 접수대로 가서 줄을 섰다.
그때 시간이 아마 7시? 8시? 거짓말 안보태고, 11시 넘어서 까지 줄을 서서 접수하려고 기다렸다.
접수대에서 분실한 사람들의 이름과 비행편들을 적는 사람은,
아마 저기 저 하와이나 뉴질랜드에서 온 것 같다.
느긋하기 짝이 없고 세상 즐겁다. 가방을 잃어버린 건 우리의 잘못이고, 자신은 자신의 일을 할 뿐.
이러다가 신청도 못하고 내일 다시 와야 할까봐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내와 딸은 저기 저쪽 벤치에 앉아, 아니 이제는 누워 몇시간째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다. 그것도 너무나 들뜬 기분으로 오늘 아침에 한국에서 핀란드, 여기 베를린까지 왔다고. 그런데, 여행 첫날의 첫 장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아내와 딸에게 너무 미안했다. 괜히 베를린을 첫 여행지로 선택한건가.
아, 정말 힘들다. 빨리 신청하고 호텔로 가고 싶다.
드디어, 나의 순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꾹 신청서에 담아내고,
몇일이 걸릴 지 모른다는 얘기와 함께, 가서 기다리라고 한다.
난 여행자고, 호텔에 있을텐데 몇일 있다가 프라하로 넘어가.....(다음 손님)
듣지도 않는다. 뭐 당연하겠지만, 프린트해 간 호텔 주소를 어떻게 어떻게 찾아 눌러 적고는,
간절한 눈빛을 한번 더 전해주고, 그 자리를 떴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벤츠 택시( 다 벤츠다)를 잡아타고, 호텔로 직행했다.
호텔에 가자 마자 체크인을 하면서, 가방을 분실했다고 울먹이면서 얘기하고는,
가방이 오게 되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항상 있는 일인 듯, 자연스럽게 받아치는 컨시어지를 보면서 더 걱정이 앞선다.
그래,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그래도, 2개의 가방이 무사해서 오늘은 걱정없겠구나라고 안도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씻자마자 골아떨어진 것 같다. 아니, 나는 잠을 안자고, 핀에어 앱에 1:1 서비스를 통해 채팅을 했다.
나는 핀에어를 많이 이용하는 XX기업의 누군데, 이번에 가방을 잃어버려 신뢰를 많이 잃었다.
다음에 쇼가 있으면 정말 핀에어를 이용할지 심각하게 회사에 건의하고자 하는데,
가방을 빨리 찾아주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했다. 물론 유창한, 유창하고 싶은 영어다.
나는 가장이었고, 내가 처리하지 않으면 심각해지는 상황이라,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이 더하기를 했다.
할일은 다했고, 더 이상 할 건 없고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건 없다. 잠을 청했다.
아침이 밝았지만, 가방은 없었다.
그 와중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맛있는 조식은 또 입에 잘 들어간다.
믿을 수 없는 크로와상과 그 맛있는 유럽의 커피를 아침으로, 입에 와구와구 집어 넣고 난 뒤,
딸로 함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역으로 가서, 프라하행 열차 티켓을 구매했다.
그 말로만 듣던 유명한 베를린의 중앙역이었다.
우리는 역과 붙어 있는 인터시티호텔에 묵었고, 주변 이동을 위해 중앙역을 자주 이용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다음에도 베를린을 오게 된다면 (안올 것 같다).
프라하행 열차는 좌석이 얼마남지 않았고, 인터넷으로 예약이 안되어 직접 예약을 하러왔지만,
티켓팅머신에 쓰인 글씨의 의미를 알지 못해 헤매고 있으니, 역시나 친절하신 독일인 부부께서 와서 알려주신다.
내가 원했던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방이 없어진 아픔을 달랠만큼 티켓을 구매해 당당히 호텔로 돌아왔다.
티켓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아내에게 자랑을 하니, 아내는 그제서야 조금 마음이 놓은 듯 했다.
나를 믿지 못했는지, 아님 가방으로 인해 마음이 불편한지는 모르겠으나 여전히 조금은 긴장된 모습이었다.
하여튼, 우리는 베를린에 도착했고, 가방보다 베를린의 곰이 좋은 딸은 호텔 앞에 뒤집어진 곰 형상 앞에서 멋드러진 컷을 남겼다.언제나 밝은 우리 딸을 보면 항상 기분이 좋아지듯이 오늘 하루도 이제 시작이다.
그래, 가방은 올 것이고 여행은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