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우리의 시간들] 4. 베를린 열전(熱戰)

여름과의 사투

by 유니버스

잊자 잊어,

내 가방은 알아서 나를 찾아오겠지.


새로운 삼소나이트 가방, 나름 예쁘게 커버까지 씌워 눈에 띄게 만들어놨더니,

집을 나가 돌아올 생각을 안하고 있다.

가지고 있는 두개의 캐리어를 열어보니, 다행히 베를린과 프라하에서 먹을, 입을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각 여행지마다 쓸 것들을 캐리어에 나눠 담는 아이디어는 신의 한수였다.

이 가방은 딸, 이 가방은 아빠, 이 가방은 엄마 였으면, 그냥 우리는 힘든 나날을 보냈을거다.





다시 다 잡은 정신줄을 가지고, 아침 식사 후 우리는 본격적으로 베를린을 여행한다.

내가 항상 찾은 베를린은 8월말, 9월초였다.

가전쇼는 항상 쌀쌀해 지는 길목에 시작해서 추워지기 전에 끝나 다행히 가을옷으로도 버틸 수 있는 곳이 베를린이었고, 필요하면 근처의 까데베 백화점이나 아울렛에서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환경이다.


내가 그동안 묵었던 호텔은 고급 쇼핑가가 있는 쿠담거리(퀴어퓨어스텐담의 약자)에 있는 슈테인츠베르그호텔이었고, 항상 그 근처에서 왔다갔다 했었다.

다시 얘기해서, 쇼핑하나는 끝내주는 그런 거리에 있었다.

베를린을 가본 사람들은 다 알거고, 명품 쇼핑을 위해서는 반드시 쿠담거리를 찾는다.

물론, 명품가게에 들어가면 이미 한국사람, 중국사람들이 모두 다 휩쓸고 갔고,

그 근처 약국이나 편의점에 가면 젤리, 발포비타민, 탈모샴푸 등도 동기간에는 동이 난다.


기이한 것은, 쇼가 진행되는 기간에는 중국인과 한국인은 살 수 있는 개수가 제한되는 진기한 풍경이 나타난다. 다행히 나는 쇼를 준비하기 위해 일주일 전에 도착하기 때문에, 짐을 풀자 마자 미리 사둬야 할 것들은 미리 쓸어담아 놓는다.

대단한 쇼핑력을 지닌 중국, 한국사람들은 어딜 가도 대고객이지만, 예의없는 나라의 표본으로도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 같아 항상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 날씨만을 예상한 나는, 여름이지만 선선함을 기대하고 베를린 첫날의 여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베를린의 그 열기는 과히, 대프리카의 열기를 몰아낼 정도로 강력한 독일 전차 군단 그것이었다.


우리는 호텔 앞에서 출발하는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우리의 첫 장소인 베를린 궁전에 내렸다.

베를린에서는 시티투어 버스로 각 지역을 돌 수 있으나, 다니지 않는 유명한 곳들은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같은 시티 투어버스라면 당연히 해당 포인트별로 탑승이 가능하니까 미리 커버 영역이 넓은 시티투어 버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중앙역을 시작으로 첫날은 쿠담이 있는 쪽으로 갈 생각이었고,

둘째날은 반대쪽으로 여행을 할 생각이었다.

쿠담에는 명품거리외에 그 유명한 베를린 동물원, 까데베 백화점(유럽최대), 카이져 빌헬름성당(2차대전 폭격성당의 잔해), 소니센터, 그리고 브란덴 브루크문(비긴어게인 촬영지)까지 였고,

둘째날은 체크포인트 찰리와 베를린 성당, 그리고 근처의 박물관섬 투어를 잡았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지만, 가족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건 박물관섬(실내) 투어 프로그램이었다.

참고로, 박물관이 섬에 있는게 아니라, 박물관들이 섬처럼 모여 있다고 박물관섬이라고 한다.





아침이라 그런지 그다지 더위를 못느꼈지만, 버스는 이상하게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역시나, 첫 여행지에서의 첫 일정이라 딸도, 아내도 살짝은 긴장한 척, 나는 너무나 여유있는 척하면서 온갖 아는 척이란 아는 척은 다 해대고 있었고, 궁전으로 들어가면서 부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베를린 궁전, 솔직히 궁전은 그다지 개인의 별장 수준이어서 그다지 감흥이 크지 않았다.

유럽은 어디에다 볼수 있는 궁전들, 그 궁전에서 실제 일어났던 얘기들과 사람들, 역사를 공부하고 가지 못한 우리는 그냥 눈으로 대충 보고 다음 코스로 이동하자고 눈으로 얘기 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첫 일정이라 최대한 눈안에, 가슴속에 이 시간을 즐기려고 노력했다.


다시 버스를 탄다. 7월말의 베를린, 최악의 날씨다. 습도와 에어컨없는 버스, 그리고 내리쬐는 태양.

다음 코스는 쿠담거리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성당 앞에 내렸다.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인해 성당의 일부가 무너졌고, 그걸 그대로 보존하면 오히려 관광상품과 연계한 멋진 건축물이다. 이런 모습에서 우리는 의식이 있는 나라의 단면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기념품을 팔고, 그 역사를 재현하려 무너진 곳의 보강공사까지 하고 있다. 맨하탄의 911 테러를 기리기 위한 그라운드 제로도 그 의미를 같이 한다. 무너진 곳에 새로운 무역센터가 생겼지만, 이곳 베를린에서는 그대로 그 아픈 역사를 남겨둘 수 있었다.


더운 여름이라 벌써 지치고 배가 고프다. 설명해도 사진찍고 나니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신호를 건너, 자주 가던 피자집으로 안내했다. 매일 저녁 나는 피자집에서 피맥도 하고, 커리부어스트로 허기를 달랬던 추억으로 그 피자집으로 안내했다. 역시 중심이 되는 곳이다 보니 사람들도 많고 차도 많다. 평일이지만, 지하 카페에는 여유를 즐기고 있고, 관광객인지 모를 사람들은 쇼핑몰과 버스를 오간다.


여기는 페페로니, 고르곤졸라 피자가 정말 예술인 집이다. 난 가족의 반응이 궁금했다.

아주 작은 피자집이라 안쪽에는 자리가 거의 없다. 바깥에 자리를 잡고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서 피자를 기다린다. 피자가 드디어 나왔다. 콜라와 밀맥주가 함께 나왔다.

가족의 얼굴은 굳어있다. 피자는 여전히 환상적이다. 더운데 부채와 선풍기로 열을 식히고 있다.

고르곤졸라와 같이 나온 꿀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돌아다니는 꿀벌에게도 좋은 식사거리였다.

여기도 에어컨은 없다. 더운데 벌까지 앵앵거린다.

이 더위에 피자를 그것도 밖에서 먹다니, 냉면도 아니고 팥빙수도 아닌 피자를 ...난 맥주를 시켜 혼자 벌컥거리면서 마시고, 이내 눈치를 본다. 얼음도 없는 콜라를 맛없게 먹고 있다. 베를린에서는 커리 부어스트도 너무나 맛있다고 얘기해 줬지만, 혼자서 많이 부어먹으라는 눈치다.


다들 (제발) 만족스러운 눈치다. 맛은 정말 환상적인데, 그 맛을 잊은지 오래일 듯.

아빠는 이렇게 힘이 든단다.





자, 이제 배를 채웠으니 이동해 볼까?

아내와 딸은 호텔로 가자며 온갖 짜증을 부리기 일보직전이다.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방으로 부터 심리적인 해방감을 맛보기 전에 더위로 인해 가족에게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화려하게 시작한 가족의 베를린 여행기에서 벌써 부터 위기가 찾아온 걸까?


이제 나는 근처 베를린 동물원으로 가족을 이끈다.

사실 동물원에 갈 생각은 없었으나,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가던 중 동물원이 보여 방문해 보기로 했다.

폰으로 검색을 해서 검증을 해본 아내는 딸이 좋아하는 판다가 있다는 걸 보고, 과감히 결정.

나도 매번 출장 중에 동물원이 있는 건 알았지만, 혼자 또는 출장자들끼리 동물원을 가는 건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것 같아 매번 미뤄왔었고, 사실 동물원에 흥미도 전혀 못느꼈다.

베를린 동물원은 독일과 중국의 수교 기념으로 2017년에 판다를 입양?했다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우리가 간 2018년의 딱 1년 전에 판다가 베를린 동물원으로 들어왔다.

베를린 동물원은 어떤 모습일까?

사실 우리나라 동물원과 별반 차이가 있겠나하고 기대없이 들어갔다.

입장료가 기대없이 들어갈 수준이 아니었다. 아주 마음을 꾹 먹지 않으면 안될 수준인, 성인 기준 3만원 정도된다. 무슨 동물원이 3만원씩이나 하는지 모르겠네. 그래도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이라고 한다. 솔깃한다.


나중에도 나오겠지만, 우리는 핀란드에 가서는 무료로 운영하는 아주 오래된 놀이공원도 갔었다.

무료를 좋아하는 우리는 동물원을 3만원, 3만원. 그래, 뭐 들어가자, 이번에 아니면 절대 못본다.

내 평생 베를린 동물원을 언제 또 다시 오겠어. 나중에 딸이 독일 유학하면서 베를린에 살면 모를까, 그때가 아니면 베를린 동물원 올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한 동물원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커다란 망이 없이 그저 벤취옆에서 동물을 볼 수 있는 수준, 날아다니는 새들은 내 옆에서 앉아 부리로 쪼을 것만 같고, 물속의 플라멩고는 금방이라도 날아서 덥칠 것 같다.


판다, 계속 잔다.

판다를 보러갔는데, 계속 자길래, 아이스크림으로 부을대로 부은 딸을 달래본다.

자꾸 그렇게 잠만 자면 다른데 판다.


동물은 다 똑같이 생겼다. 하지만 동물원은 생태공원처럼 여유있고 시원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풀어놓은 동물원에서 동물의 변냄새가 전혀나지 않는다. 변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처리되도록 하는 자연친화적인 동물원이라, 실내에서 시멘트로 매일 처리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동물원과는 쾌적함에서 비교가 많이 되었다.


솔직히 우리는 개인당 3만원에 해당하는 정도 수준의 구경은 제대로 못한 채, 이제는 정말 고픈 배를 채우러 다시 쿠담거리를 배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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