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태국을 출장으로 다녀왔다.
같이 일했던 선배 형님이 해외에 있는 대기업 현지 법인에 현채인으로 채용되어 근무하고 있어, 출장 겸해서 겸사겸사 다녀왔다. 간김에 골프도 치고, 현지에서 이름난 식당에 가서 맛있게 식사도 하고, 맥주도 거나하게 마시기도 했다.
주재원도 했던 선배라 해외에 사는게 익숙해서인지 전혀 이질감이나 불편함은 느껴지지는 않았다. 약간 그을린 얼굴이 한국에서보다 건강한 모습이었고, 이미 현지에 많이 적응을 해서인지 어딜가나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왔다. 아이들은 모두 한국에서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고 있고, 부부만 나와서 살고 있어 그다지 큰 경제적인 부담도 없고, 급여로도 충분히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후에 대한 경제적 준비가 어디까지 되어 있는지는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서울에 자가가 있고, 아이들이 모두 성장했으며, 직장이 있어 생활비를 충당할 수준은 되니, 크게 걱정은 되어 보이지 않았다. 각자만의 걱정은 있겠지만, 그다지 부족한 삶이라고는 할 수 없어 보였다.
은퇴가 다가오면 바다가 있는 휴양지에서 리조트에 살면서 해변을 산책하고, 맛있는 음식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선배가 살고 있는 그곳 같았다.
하지만, 현지에서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보니, 단조로운 일상이 반복되었고, 회사로 출근하는 것 외에는 한국에서 사람들이 출장이나 여행을 왔을 때 조금의 변화를 맛볼 수 있는 것 같았다. 단조롭고 고요한 삶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부담없는 삶이지만, 그렇지 않고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좋아한다면 가끔씩 외로움을 심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가 있더라도, 남편이 있더라도...
모든 것이 사람의 차이고, 보는 사람의 시각, 본인의 실제 마음에 따라 다른 것이라, 어떤게 맞고 어떤 것이 부족한 것인지 판단하기에는 힘들고, 판단할 필요도 없는 범위의 것이다.
나도 짧지만 3주~4주동안 해외에 머물러 본 적이 몇 번있다. 한달동안 출장으로 가 있었던 적도 있고, 공부를 위해 3주 정도 유럽에 가있기도 했었다. 산다는 것보다는 잠시 지낸다는 생각에 힘든 것도 잊고 그 시간을 즐기기만 했던 것 같다. 돌아갈 곳이 있기에, 산다는 마음보다는 잠시 머무는 것이라 생각해서인지 어떤 때는 시간이 아깝고, 어떤 때에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 적도 있다.
중요한 건 시간은 항상 다가왔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나 집에 와 있었다는 것이다. 잠시의 추억을 갖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루틴이 참 좋았고, 그렇기에 다음의 여정을 다시 꿈꿀 수 있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고 정말 한달살기라는 꿈들을 하나씩 이뤄나가면서 스탬프를 찍고 다닐 날들이 다가오는 것만 같다. 아직도 여전히 부족해 보이는 경제적 상황을 좌시할 수 없어 매일 서두르는 티가 역력하지만, 한편으로는 곧 다가올 그 시간들에 한껏 미리 취해있다.
새로운 곳에서, 또는 익숙한 곳에서 한달을 살아보는 것, 아무 것도 걱정거리가 없고 해야 할 일이 노트에 빼곡히 적혀있지 않은 곳에서의 한달살기란 어떤 느낌일지 아직 감이 안온다. 그동안의 한달살기는 항상 뭔가를 해야 하고, 정해진 일정에 맞춰 지내야 하는,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한달동안만 해외에 있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가 매번 떠나는 여름휴가나 여행은, 떠날 때는 소중하고, 돌아올 때는 아쉬움 그 자체다. 그 소중함과 아쉬움이 커서 경제적인 것들을 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아무런 걱정없는 한달살기는 반대로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는 현실적인 생활로 치환될 수 있다.
모든 것을 따지면서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을 한다는 건, 걱정만 안고 떠나는 것일 수 있어 오히려 아무 생각없이 비워내면서 생활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단계별 여정일 수 있겠다 싶다. 그렇다고 모든 단계를 밟아 올라야 통과하는 것이 아닌, 아래로 내려가는 법을 알아가는 여정일 수도 있겠다.
어떤 것이 되었건, 현실로 다가올 그 시간, 그 시간을 더없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할 것들을 하나씩 어렵사리 준비해 놓는 철저함이 필요한 시기다. 그 때 더 즐겁기 위해 지금은 조금 힘들어도 된다. 힘듬이 없는데 즐거움이 있다는 건 세상 불공평하다고 나 자신조차도 판단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