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풀어야 할 미래가전의 숙제이자 사명
많은 종류의 가전들 중에 기술적으로 큰 우위가 있어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제품들은 찾아보기가 어려운 요즘이다.
기존에는 비슷한 기술이지만, 간발의 품질차이로 경쟁 우위에 있던 건조기나 드럼세탁기, 에어컨, 공기청정기, 생소하던 시기에 혜성같이 나타난 스타일러 외에는 그리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기존에 있던 제품을 좀 더 좋은 품질과 디자인, 사용편의성을 높여 고객들에게 친근한 브랜드와 서비스로 공략을 했었다.
최근에는 가전의 명가인 LG전자에 위기가 왔다고들 많이 하던데 정말 그런지는 모를 일이다. 항상 밖이랑 안은 온도 차이가 나다보니 오히려 안에서는 모르는데 밖에서 더 빨리 아는 경우도 있다. 최근 국민브랜드로 등극했던 인도시장에서 IPO와 함께 상장을 했다.
정말 위기일까.
이미 중국이 한국을 앞선 기술들은 2차 전지를 비롯해 전기전자 분야 등 많은 부문에서 생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고, 가전도 그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격적인 면은 물론이고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능까지 훨씬 더 앞서나가고 있으며, 디자인이나 사용성 측면, 내구성이나 품질 측면이 아직은 시간이 조금 남은 상황인 것 같다.
가전은 어떻게 이 경쟁상황에서 피터틸이 '제로 투 원'에서 얘기한 0을 1로 만들 수 있을까? 지금의 구조와 기술, 경쟁력으로 가능한 상황일까?
이 난관을 타개할 수 있는 가전의 경제적 해자가 과연 있을까?
모바일을 통한 스마트홈, 인공지능을 통한 기능과 품질 향상 및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 IoT제품과 연계된 서비스가 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차별화이고, 플랫폼 서비스 프로바이더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스마트홈에 초반부터 참여했던 경험자로서 지금의 스마트홈은 가전과 사람이 만들어주는 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 서비스로 진화할 뿐, 제어와 상태확인을 하는 그 이상의 서비스이지는 않다. 연결을 통해 서비스는 확장했을 뿐, 누구나 할 수 있는 서비스임은 해본 사람은 안다.
하드웨어 측면과 원가, 생산성 측면에서 이미 중국과의 경쟁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프리미엄을 고수하면서 달려왔던 지난 날들의 영광은 여전히 브랜드의 왕자자리를 지키게 해준 역할을 하지만, 고수하면 여전히 부러지게 마련이니 유연하고 빠른 태세전환이 필요하다.
플랫폼 사업자, SW에 기반한 제품을 지향했지만, 여전히 사업성이 낮고, 기존 제품의 특성상 SDV와 같은 전략을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구성원들의 이해도가 낮고 내부적인 반발이 심해 모든 기업에서 겪는 Transformation이라는 전략의 어려움도 존재한다.
오히려 중국기업은 리테일분야에서부터 쌓아온 플랫폼 사업자로서의 경험이 풍부해, 사업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충분히 자금과 시장, 데이터와 여전히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카메라를 통한 인공지능부터 자율주행까지 완성시켜나가고 있는 중국은 어설프게 시작해서 많은 유사한 기업들이 실패를 반복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 만들어져 있고, 한국은 작은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에서 대기업의 신제품만 혁신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LG와 삼성은 모두 종합가전 회사이지만, 삼성은 여전히 반도체와 모바일이라는 크게 중요한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인공지능 시대의 가장 큰 수혜자인 모바일을 끝까지 고수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에 비해, LG는 너무나 짧은 시간 내에 실적을 내야 하는 기업의 구조상 몇 년 후를 위한 기획과 전략은 신경쓰지 않는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전문가가 전문가가 되어 있는 모습, 전문가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어가는 모습이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는 Global 가전 1위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직접 외치는 Global 1위보다 모두가 인정하는 1위가 되어야 하고, 1위보다 더 실속있는 1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으로 경제적 해자를 가져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가장 큰 경제적 해자는 리더들이다. 큰 일을 해낸 리더들이 LG에는 있었고 아마 또 그런 리더가 이끌 것 같다. 경영전문가가 아닌 LG만의 기술과 특화된 제품의 기술전문가가 이끄는 LG전자가 경제적 해자이고 경쟁의 원천이다. 조성진CEO가 그랬고 곧 그 뒤를 이을 사람도 그럴 것이다.
경영전문가, 전문경영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분야가 가전이고 제조분야인데, 마케팅컴퍼니, 서비스캄퍼니를 지향하는 순간 경쟁력은 사라진다.
또 하나의 경제적 해자는 이제 가전도 Web3 시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고, 그 개념을 원천으로 제품과 서비스의 틀을 봐야한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정보전달 웹브라우져의 시대인 Web1.0, 상호소통할 수 있는 페이스북, X,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SNS의 Web2.0시대, 그리고 이제는 개인이 참여하고 소유하며 탈중앙화된 정보의 분산으로 대표되는 Web3.0의 시대가 되었다. 아니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 과도기에 있고, 빅뱅이 일어날 것 같은 시점이다.
이런 시대에 중앙화된 데이터를 소유하고 이를 기반으로 플랫폼 서비스를 한다는 것은 2010년 처음으로 스마트홈을 상용화할 시점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으로 제어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광고하고, 미리 알아서 셋팅해주는 이미 정해진 조건의 조작들은 이미 2020년에 끝났다. 인공지능으로 해야 할 것은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 광고나 기능을 제공할 것이 아니라, 아무런 개입없이 동작시키고 마무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감독하는 것이다.
분산된 데이터를 허용하고, 이 데이터를 개인이 소유하며, 개인이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시대, 가전의 디지털 자산화에 대한 아이디어는 여전히 중국이 꿈꾸고 있지 못하는 영역일 것 같다. 이미 디지털화된 가전이 연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더 많은 가전을 디지털자산화의 영역으로 포함하여 침범할 수 없는 성벽을 쌓아나가는 것이야 말로 지금 막 진입해서 싼 가격에 시장을 점유하고자 하는 중국업체들에게는 ‘예상할 수 없었던’ 너무나 큰 장벽으로 다가올 것이다.
테슬라와 우버가 직접 시범을 보였듯이,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단일 품목 중 가장 많은 기기인 가전은 개인이 자신있게 소유할 수 있는 단순한 소모성이 아닌 ‘디지털 자산’이 될 수 있고, 그 자산으로 많은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다. 공상과학 영화에 비치는 가전의 모습이 현재와 다르지 않은 이유는, 더이상의 가전의 외형변화가 갖는 의미는 크지 않지만, 내형적인 변화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기에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존재하는 것 같다.
홈 허브에 매달리지 말고, 오히려 한 단계 더 나아가 가전의 진영을 새롭게 짜보는 신선한 발상도 필요해 보인다. 하드웨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개발은 어느 누구보다 진지하지만, 좀 더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투자한다면 앞으로 다시 명성을 쌓아나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