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해도 될까요?

by 유니버스

어제는 교수님을 만나뵈었다.

촌스럽게 박카스 한박스를 사들고 이리저리 헤매어가면서 오랜만에 대학교를 찾았다. 비록 내가 졸업한 학교는 아니지만, 대학원 건물에 들어서니 기분이 남달라졌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면서 조심스럽게 '미래의' 지도 교수님을 찾아서 메일을 쓰고, 이차 저차에 대한 설명과 함께 찾아뵙고 연구주제를 논의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교수님께서는 흔쾌히 시간을 알려주셨고, 당장 다음날 박카스와 비타500 중 어떤 것이 나을까 고민하다가 상징적인 박카스박스에 박카스만 넣어서 들고갔다.


교수님실 문을 똑똑 두드리니 젊은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안으로 들어가보니 어지럽게 흩어진 책과 옷가지, 갖가지 운동기구들이 꽉찬 모습이 영락없는 교수님 방 그자체였다.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인사를 드리고, 조용히 말을 꺼내본다.

내가 말을 두마디 이상 하기 전에 이미 교수님이 일장연설을 시작하신다. 아마 나말고도 여럿이 이미 지나갔을 수도 있고, 무슨 말을 할 지 뻔히 아시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전공에 대한 소개, 교수님 본인에 대한 소개, 현실 등을 쭉 말씀해 주신다. 괜히 고민을 했나 싶을 정도로 명쾌한 설명에 그동안 품고 있던 궁금증이 말끔히 해소된다.


어떤 연구주제가 좋을까도 인공지능의 힘을 빌고, 여러 사이트를 찾아다니면서 정리해봤지만, 내가 정말 그걸 하고 싶은 것이 맞는걸까와 괜히 박사타이틀을 얻으려고 쉽게 생각한 것 아닐까 사이에서 많은 실랑이가 내면에서 벌어지는 듯했다.


박사에 대한 막연한 동경, 조금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아주 작은 생각, 기술사라는 것만으로는 뭔가 매번 부족해 보이는 이 가증스런 마음이 복잡하게 뒤섞이면서 한동안 뒤숭숭했는데, 교수님을 찾아 뵙고 나니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로 다시 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100% 합격은 없습니다만, 연구주제는 좋은 것 같습니다. 잘 한번 작성하셔서 도전해 보시죠"


교수님의 이 한마디가 나에게는 힘이 되기도, 굴래가 되기도 한다.

아내는 꼭 해보라고 종용한다. 딸이 공부할 때 아빠도 같이 공부하는 모습이 좋아보이고, 나중에 좀 더 큰 사업을 오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서 '기술사와 박사'를 같이 보유하고 있다면 더 전문적이기도 하지만,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죽도록 기술사 공부할 때는 딸은 아직 너무 어려서 '아빠는 왜 저렇게 열심히 공부해?'라고 할 정도였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기술사를 합격하고 나서 쉬지 않고 뭐라도 계속 공부하는게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는 멈추는 순간 다시 그 엔진에 열을 올리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힘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교수님을 만났고, 지금 등록원서를 쓰고 있다.

연구주제는 인공지능과 하루 종일 대화하면서 다시 원점, 아니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제자리를 찾아와 나름의 멋진 주제를 완성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어떤 주제가 좋은가보다, 내가 이 과정에서 어떤 것을 더 얻고 경험하면서 성장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굳게 믿어보자.


등록금 마련을 위해 주식을 팔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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