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의 방향, 맞는걸까?

IT대기업 퇴사, 후회, 다짐과 실행

by 유니버스

매일이 고민의 연속이고, 불안함으로 휩싸인 하루를 보낸다.


언제부턴가 다시 시작된 인생에 대한 고민은 매일 반복되면서 나를 괴롭힌다. 어떨땐 행복하다가도 어떨 땐 후회로 가득한 하루를 보낸다.


'대기업 부장' 드라마를 몰래 홀짝 홀짝 보면서, 공감이 많이 되었던 건 아마 그런 생활을 해봤기 때문일 것이고, 직접 내 발로 뛰쳐나온 호기로움과 다른 스토리이기에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퇴사를 하고 난 뒤에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전직장 미화효과(Rose-tinted memories)'라는 것 때문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안좋았던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만을 더 크게 떠올리게 된다고 하니, 몸과 마음이 좋지 않아 벗어나려했던 나의 기억은 어렵게 찾아봐야만 만날 수 있는 것 같았다.


왜 난 잘다니던 대기업을 뛰쳐나오고 싶어 했을까?

사실 대기업이라는 말을 넣는 것보다 '잘 다니던 안정적인 회사'를 나왔을까로 표현하는게 듣기 덜 거북하지만, 조금 더 임팩트를 싣고가야 드라마틱해진다는 건 일종의 전략일거다.


회사에서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고, 미래가 불안하다는 생각을 반복해서 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자 했던 일보다 상사가 주문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는 분위기였고, 그 '주문한' 일을 하면서도 몇 년이나 후퇴된 것 같은 전략과 방향, 기술 수준에 나 자신이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임원으로 가기 위한 나의 노력은 빛을 발하지 못하였고, 주변의 지원들조차 너무나 시대착오적이었고, 근시안적이었다. 이미 미래가 와있는데, 그 수준을 맞추지 못하는 분위기와 지지부진한 전략들이 하루하루 나를 지치게 했고, 마음이 급해있던 나에게는 한없이 큰 짐으로 다가왔다.


결국 '믿지 말아야 할' 회사에 대해 실망하고 난 뒤, 퇴사를 결정하고 회사를 옮기고 나니 조금은 성급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고, 그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결론은, 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 다시 한번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준비는, 가족, 돈, 일, 건강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원천적인 부분인 돈과 일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놓기로 했다.


"혼자서도 일해서 돈 벌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하고, 일하지 않아도 돈이 나오는 구조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


몇번이고 되내이며 생각했던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언젠가는 혼자서도 일할 수 있는 상황이 제일 행복한 상황이 될 것이고, 그걸 만들어 놓고 난 뒤에는 경제적인 '여유'를 위해 알아서 현금이 나오는 구조를 시스템화해 놓고나야 원하는 생활이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래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그렇게 생각하고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보다가 결정한 것이 '기술사'였고, 1인 법인이나 개인사업을 하더라도 충분히 개인 일을 영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같았다.


물론, 대뜸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단순 경력만 가지고는 더이상 통할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자격이 덧붙여져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기술사를 선택한 이유는, 아무런 사업의 베이스가 없는 사람이 준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고, 현재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에서 사업을 배우면서 기존 경험을 녹일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예전부터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쌓이고 쌓여 또한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켜켜히 쌓인 노력은 미래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걸 다시 한번 더 느끼게 되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6개월'만에 합격을 했고, 감리원까지 취득을 했다. 간절함이 시험에 대한 집착을 가져오게 했고, 그 결과 1년에서 2년, 더 이상도 걸리는 기술사 시험을 단기간에 합격하게 되었고, 뭔가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기술사 자격을 따게 되면, 뭐라도 큰 변화가 생길 것 같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뭐라도 하기 위해 움직인다면 변화가 생기지만 그렇지 않으면 일상에 전혀 변화는 생기지 않았다.


기술사 취득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그토록 하고 싶었던 평가위원에 지원하는 것이었다. 초반에 지원하는 방법이 생소해서인지 쉽게 찾아지지 않던 평가위원자리는 조금씩 익숙해 지기 시작했고, 왕복 3시간이나 걸리지만 첫 경험이 가장 중요함을 알기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하나씩 경험을 쌓아나갔다.


하지만, 기술사는 삶을 책임져 줄 자격증이 아니라, 삶의 일부를 채워주고 조금 더 빛나게 해주며, 죽어갈 때 죽지 않을 정도의 힘을 주기에 적당해 보이는 최후의 보루일 뿐이었다. 적어도 정보관리 기술사는 말이다.


지금도 역시 지원을 해야 하는 자리들이 있긴 하지만, 지원하지 않아도 알아서 연락오기도 하고, 수당도 만만치 않게 올라가게 되어, 부수입으로 당당히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시험공부를 하면서 정리했던 노하우와 암기 노트 등을 예쁘게 다듬어 책으로 만들었고, '역시나 익숙하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판매를 하면서 또 다른 부수입으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분명, 자격증 하나(사실 동시에 4개 정도가 생기긴 했지만)로 미래의 일에 대한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다. 그저 부수입 정도일 뿐이고, 언젠가 주수입원이 되는 날이 오더라도 전혀 어색하거나 덜익숙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에 맞는 경험'이라는 걸 미리부터 병행해 둬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해서 하고 있다.


일단 하나에 몰입에서 '새롭게 할 수 있는 뿌리를 만들었다'는 성취를 했다는 것 자체가 큰 소득이고, 하나를 끝냈으니 이제는 좀 더 현실적으로 흘러가는 경제적인 상황들을 정비해야 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수입의 시스템화



한번씩 해본 경험으로 이제는 용기를 얻었지만, 부수입일 뿐이었고, 핵심 수입원은 될 수 없었기에 좀 더 체계적인 '경제적 여유'를 얻기 위한 시스템 만들기에 돌입하기로 했다. 이것만 다 완성이 되면 정말 큰 산을 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고민하면서 조금씩 업그레이드를 해나갔다.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도대체 자산이 얼마고, 매월 얼마씩 들어오는지, 당장 수입이 없다면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었다. 부동산은 정확히 어느 정도 자산가치가 되는지, 주식과 연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렇게 가면 되는건지, 보험은 잘 셋팅이 되어 있는지 등등 봐야 할 것들이 산더미 같았다.


일단 엑셀을 열어두고, 자산을 부동산, 금융자산으로 나누고 하나씩 적어나갔다. 전체를 정리해 본 적이 있긴 하지만, 너무 오래 전에 정리해본 터라 기억도 안나고, 구체적이지 않아 금방 식상해졌었던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부동산의 실거래가와 보유가치를 정리하고, 금융자산을 정리해 보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생각보다 적은 자산, 뒤죽박죽 정리가 안된 보험, 투자인지 저축인지 보장성인지 구분이 안되는 보험, 많은 계좌에 흩어져 있지만 전혀 수익관리나 포트폴리오가 없는 주식 등 엉망도 이런 엉망이 없었다. 낯이 뜨거워지고, 등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다.


회사 일에 쫒겨 적당히 '50대 후반에 하면 되겠지, 어떻게 되겠지'하고 자기 위안을 하고 살아온 시간을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되었고, 이제 현실이구나라는 생각에 하루 빨리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만 같았다.


부동산도 살고 있던 아파트를 매도하고 새로운 아파트로 갈아타기 위해 대출을 내고, 재건축하고 있는 아파트를 매수했다. 편안한 생활이었긴 하지만, 부동산도 역시 가치를 높여가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시간을 내어 몇 군데 임장도 해보고 부동산중개소를 찾아다니면서 가장 현실적인 아파트를 매수했고, 지금와보니 시간을 들인 보람은 있었다.


부동산이 정리되고 나니, 이제는 금융자산이 문제였다. 일단 여러 영상과 책들을 탐독하면서 조금씩 머릿 속을 정리해 나갔고, 자산과 현금흐름의 목표를 자연스럽게 잡기 시작했다.


현금흐름 관점에 가장 중요한 나이를 55세, 60세, 65세라고 정리를 한 후, 그 나이에 맞게 역으로 준비해야 하는 자산과 현금을 챙기기 시작했다. 금융자산 1차 목표는 12억으로 연금 5억, 배당주와 일반주식을 포함해 주식 7억으로 잡았고, 현금흐름 목표는 500만원으로 했다.


예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10억, 그것도 금융자산 10억은 그동안 실패도 경험했지만, 일단 모인 돈들과 함께 부지런히 투자를 한다면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되었고, 공격적인 적립으로 충분히 12억을 달성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많이 절약하고 살았지만, 또 많이 쓰기도 했는데, 그나마 조금의 시드가 있었기에 투자만 잘 하면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연봉도 중요하지만, 연봉보다 중요한 건, 소비이기 때문이다.


40대 중반을 넘긴 시점이라, 연금의 중요성을 더 크게 느끼게 되었고, 연금관련된 책만 10권 이상을 보면서 '국민연금'을 제외한, 개인연금, 퇴직연금을 챙기기 시작했다.


몇개의 계좌가 필요하다는 건 조금 더 높은 레벨이었기 때문에, 그냥 개인연금을 위해 IRP, 연금저축펀드, ISA에 대해 공부하고, 쓸데없이 들어가던 연금보험, 투자성 보험을 모두 해지해 버리고, 연간 최대 한도로 연금계좌에 먼저 불입하기 시작했다.


퇴직금과 함께 매년 불입한 IRP, 연금저축펀드는 나와 딸의 계좌를 만들어 최대 한도로 넣고, 가장 쉽고 안정적인 미국지수ETF로 셋업을 했다. IRP 역시 지수투자를 하면서 안정적인 성장을 해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다.


변수는 존재하지만, 그 변수가 있기에 목표한 시간이 더 빨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발상이 더 중요하다. 긍정적인 사람은 수익, 부정적인 사람은 명성만 얻을 뿐이기 때문에, 실익을 얻기 위해선 항상 긍정의 마인드가 필수불가결이다.


연금과 함께, 배당주와 여러 우량주에 투자를 하면서, 현금흐름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막연히 주식 투자를 한다는 건, 단기간의 수익 또는 손실에 그칠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삶을 위한 자산에 도달하기에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겠다라는 것을 느끼기도 했고, 경험도 했었다.


나이가 들면서 변수는 제거하고 상수만 가지고 가야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기에, 좀 더 가치있는 현금흐름을 생각해 보았다.


금융자산의 목표가 12억, '비근로' 현금흐름 500만원이 1차 목표였다면, 현금흐름이 나올 구멍은 있어야 하는데, 연금으로 현금흐름을 만들어내기에는 여전히 시간이 많이 남은 상태였다.


연금은 55세부터 가능하고, 상황에 따라 55세보다 더 늦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당장 필요하지는 않더라도 당장 손에 잡히는 현금흐름을 위해서는 배당금이라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상황이라 굳이 세금을 내야 하는 조건을 만들 필요가 없어, 배당금을 최대로 한번 받아보기로 했다. 경험해 본 바로는 단기간에 시드를 모으는 방법 중에 가장 빠르고,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배당주를 모으는 것이었다.


배당주는 몇주도 중요하지만, 예상 배당금이 늘어가는 재미가 너무나 중독적이라, 돈이 생기는 족족 입금하고 투자해서 늘어나는 배당금을 확인할 수 있다.


연금으로 연간 수익률과 추가 불입액 등을 맞춰 계획한 자산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셋팅되었다면, 배당주를 통해 원하는 현금흐름 목표까지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놓으면 더없이 안정적인 심리상태를 유지할 것 같았다.


결국 배당금으로 아내와 함께, 세전 각 2,000만원씩으로 셋팅해 놓고나면, 1차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월 283만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월 500만원 목표에 한층 더 다가가게 된다. 연금 5억을 20년간 받는다면, 월 190만원이 더해져, 월 473만원이라는 현금이 확보된다.


결국, 일을 하지 않고, 부수입에 연연하지 않고,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현금흐름 500만원은 이렇게 연금과 배당금으로 만들어지고, 이를 위해 연금 5억, 주식 7억이 있다면 전혀 문제없는 생활의 시작을 알릴 수 있다.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더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과 그마저도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생활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경제적인 틀을 마련했다는 것이 큰 산을 다시 하나 넘었다는 작은 안심은 할 수 있었다.


돈을 위해 일하지 않고, 일이 즐거워서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게끔 하는 것이 결국 나의 목표였던 것이다.



또 다른 도전, 박사학위


현금흐름, 자산의 준비가 시스템적으로 셋업이 되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목표에 무리없이 도달하게 될 것 같다면, 그 다음은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혼자만의 사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기술사 정도로는 충분히 준비가 안될 것 같고, 창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네트워킹이 부족하다보니 좀 더 큰 틀에서 준비하면서 시간을 만들어보는 것이 나에게는 맞는 방법 같았다.


지금도 여러 국가과제와 평가위원, 소프트웨어 개발사업과 함께 여러 사업꺼리들을 기획하고, 특허들도 내고 있지만, 그것과 병행할 수 있는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었던' 박사학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남들은 배부른 소리, 시간이 남아 가능한 것, 돈이 없어서 못한다는 박사학위라고들 하지만, 박사학위는 시간과 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의지와 그동안 준비해온 것들이 없다면 절대 도전할 수 없는 것이었고, 나이가 점점 차들어가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가장 나에게 맞는 것은, 공부하면서 배우고, 끊임없이 뭔가를 시도해야 하는 것이었다. 대기업의 틀에서 정해진 커리어로 위를 향해 올라가는 것도 물론 가치가 있고, 남자로서 도전해 봄직한 것은 분명하지만,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면만 보면 어두운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법이고, 소수를 위한 자리를 너무 희망적으로 보는 것도 무리는 있다.



나의 외롭고 고단한 길은,
내가 선택한 현명한 길이었다는 걸
언젠가 갑자기 깨닫게 된다.


나에게 한계를 두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에게 맞는 일을 빨리 준비하지 않고, 그냥 막연히 달리는 것만 한다는 것은 현실을 부정한 무책임한 일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안된다면, 그 끝은 역시나 '준비되지 않고 내몰리는 대기업 김부장'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다들 끓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따뜻하고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냉혹한 현실이 점점 냄비를 압박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박사에 도전하든, 기술사에 도전하든, 정답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답보다 해답,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어쩌면 책임이고 의무일 수도 있다. 뭔가를 시도한다는 것은 뭔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고, 그 결과가 때론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간에 결과물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과는 다른 쾌감이 분명 있다.


내가 가는 길이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실패한 대기업 자발적 퇴사자로 보일 수도 있지만, 타의가 아닌 내가 선택하여 가고 있는 길이고,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목표를 벌써 두개나 이루었고, 이제 남은 목표들을 채워가는 여정에 있다.


비록 가는 길이 험난하고 외롭고 같이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없더라도, 내 인생은 언제나 혼자서 개척하고, 먼저 앞서 하는 선구자적인 삶을 사는 것이기에 운명이라 받아들고, 당장 조금 아쉽고, 괴롭고, 부럽기도 하더라도 잘 이겨내고 가기를 내가 나 자신에게 응원할 뿐이다.


나에게 더 냉철하고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대서, 어떤 것이 더 현실적이고 현명한 판단인지 제대로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나 자신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박사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