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장수와 프랑스 하녀

by 유니버스

나는 전생에 프랑스의 귀족집 하녀였고, 아내는 청나라의 장수이자 사신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프랑스에서 그릇을 많이 만져본 솜씨를 자랑하고, 유럽에서의 정취가 너무나 익숙한 반면, 아내는 중국을 몹시도 사랑해 매일 중국 드라마에 빠져산다.


당연히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중국에 대한 로망과 함께 점점 당당해지는 모습이 영락없는 중국 대륙을 호령하던 장수였던 것이 분명하다.


집에서의 계급구도는 더 명확하다. 가장 최상위 포식자는 딸이고, 그 다음이 그를 보호하는 호위무사이며, 온갖 궂은 일을 하는 신데렐라인 나는 하녀나 다름없다. 너무나 극단적으로 계급을 나누는 이유는 이야기의 전개상 자연스럽기에 그냥 그렇게 가는게 좋을 것 같다.


가끔 호위무사인 중국장수 아내는 최상위 포식자인 딸과 자주 다투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맛있는 걸 들고가서 딸을 달래고 호위무사를 타이르는 일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사실 최상위 계급은 아마도 딸이 아니라, 분명히 아내인 것 같고, 그 무서운 발톱을 숨기고 사는 것이다.


무념무상으로 설겆이를 하고 있을 때면, 한없이 마음이 편안하고 그릇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지만, 가끔 집안을 뛰쳐나가 센강(세느강)가를 달리고 싶어진다. 답답한 마음을 달랠 친구는 역시 센강의 오리밖에는 없나보다. 그렇게 한참을 뛰고나면 다시 집안 일을 할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파리에 여행을 갔을 때, 에펠탑과 센강, 개선문과 르부르박물관은 그리 친근해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딸은 한없이 즐겼지만 나는 왠지 주변을 살피고 불편한 모습으로 생소해했고, 오히려 시장이나 크리스마스 마켓을 갔을 때 더더욱 익숙함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자기에게 맞는 환경이란게 있는 건지 정말 익숙함에 대한 건 몸에서 반응한다.


허름한 곳에서의 커피한잔, 길거리에서 먹는 음식들이 훨씬 더 입에 맞고, 길거리를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정겨웠다. 싼 와인을 사들고 길거리에서 마시면서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확히 동기화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우리는 청나라 사신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우연히 만났던게 분명하다. 청나라의 도자기 문화를 전파하러 온 사신과의 우연한 만남, 떡벌어진 어깨에 반해 중국인이라는 사실도 잊고, 하녀는 그만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손에 잡고 있던 비싼 프랑스산 도자기 그릇을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청나라에서 온 파란색 도료가 칠해진 도자기 그릇에 손에 갔다.


그때부터 난 청색의 무늬가 들어간 그릇을 좋아했고, 폴란드와 터키에 출장을 다녀올 때면 꼭 그 무늬의 접시와 커피잔 세트를 어렵게 포장해서 들고왔던 것 같다. 왠지 모를 편안함,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색상과 무늬가 한없이 고급스럽기까지 하다보니, 내가 포르투칼 리스본이나 포루투를 가고 싶어하는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 아닐까라고 앞뒤없이 엮어본다.


이 얘기를 한참 전부터 아내와 딸에게 해보니, 아내는 깔깔깔 배를 잡고 뒹굴정도로 넘어가다가도, 떡 벌어진 어깨란 말에 다시금 정색을 해버린다. 딸은 들은 척도 안하지만, 아빠가 하는 얘기를 듣지 않는 것도 아니라, 가끔 스토리를 꿰고 있는 듯한 딸을 보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우리는 이렇게 만났든 저렇게 만났든 하나의 가족이 되었고, 이런 재미난 스토리로 엮인 행복한 가족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이렇게 죽이 잘 맞고, 지들끼리만 노는 가족도 또 없을 거다. 까페를 좋아하는 취향, 책 읽기를 좋아하고,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며, 돈쓰기를 누구보다 싫어하는 척을 하는 가족, 이런 가족과 함께 사는 나는 참 행복하다.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삶의 방향, 맞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