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이 좋아지는 나이

by 유니버스

중국으로 출장을 떠나는 아침, 새벽부터 준비해서 공항으로 갔다. 인천에서 9시 비행기라 더 서둘러야 했고, 아침은 고사하고 커피도 한잔 못해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지난번 중국출장 때와는 또 다르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감을 실감하지만, 생각만큼 운동은 더 하지 않고 좋은 몸을 바라기만 할 뿐이다. 식사도 제대로 못한 동료들을 앉혀놓고 가볍게 끼니를 떼울 정도로만 우겨넣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 앉는다.


도착 후, 생각보다 따뜻한 날씨에 입고 있던 외투를 캐리어 손잡이에 걸치고는 잘 굴러가는 캐리어를 울퉁불퉁한 항저우 공항의 바닥을 지나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모든 차가 전기차인 것같은 느낌이라, 내연기관 차를 보게 되면 오히려 더 반갑다.


호텔에 체크인도 못한 채, 거래처로 가서 간단히 식사를 한다. 신세계 센텀백화점보다 커보이는 백화점 안에 있는 중국식당이었다. 평일인데다가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없고, 직원들이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어서 미안한 마음으로 주문을 시작했다. 중국식을 워낙 좋아하던 사람이라 부담없이 주문을 하면서도 음식에 대한 걱정은 전혀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중국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하나씩 맛을 보기 시작한 순간, 작년 말에 왔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는다. 음식이 조금씩 입에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받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라고 하면서 이것저것 먹어보지만,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맛과 냄새가 올라온다. 나름 한국사람들이 출장을 와서 많이 식사를 하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뭔가 모르게 거부감이 올라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마치고 난 후, 호텔 체크인을 한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온 탓에 피곤해 쉬어야 한다는 핑계로 거래처와의 저녁식사를 내일로 미루고 호텔 근처 식당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호텔 건물 주변에 있는 로컬 식당은 선뜻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 버렸고, 그나마 찾은 곳이 충칭식 훠궈집이었다. 매운 고추가 육수를 덮을 정도로 매운 충칭식이라 그런지 다들 거부감없이 덤벼들었다.


매운 음식이라 특유의 향도 없고, 워낙 한국사람들은 매운 훠궈를 좋아하다보니 우리도 중국식 백주와 함께 음식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입이 얼얼하다. 마비가 되는 느낌이지만, 점심식사도 제대로 못했기에 계속해서 씹고 또 씹었다. 다행히 처음 중국출장을 온 동료들도 중국음식에 잘 적응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지막 일을 다 마치고 난 후,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나름 유명한 중국식당에서 거래처와 석별의 정을 나누기로 하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지난번에도 가본 곳이라 전혀 어색함은 없었지만, 대부분 비슷한 메뉴로 주문하다보니 그다지 새로움은 없었다. 음식들을 하나씩 먹기 시작했지만, 예전만큼 큰 즐거움은 없었고, 머릿속에는 계속 김치찌게, 순두부찌게가 생각나기 시작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보니, 마지막 식사임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중국 동방항공의 기내식은 그야말로 구색맞추기일 수 밖에 없었고, 과일 하나 먹고 나서는 인천공항에서 먹을 한식만 기다려졌다. 인천공항에 내려 정신없이 입국수속을 하고 난 후, 달려간 곳은 한식당이었는데, 너무 급하게 찾다보니 매번 가던 터미널2의 식당을 가지못하고 터미널1의 푸드코트를 가버렸다.


그럴듯 해보이는 음식사진에 현혹되어 냉면, 순두부찌게 등을 주문했는데, 너무 실망스러워 외국손님들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한국을 찾은 손님들에게 내놓는 음식이기도 한데, 냉면은 면이 얼어서 딱딱하고, 육수는 인스턴트 냉면육수였다. 순두부찌게는 그냥 맹물에 순두부만 올려놓은 듯한 맛이어서 너무나 실망스러웠는데, 가격은 또 어마어마했다. 실망스럽고 부끄러웠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푸드코트인데도 불구하고 이렇다는 건 아직 우리가 준비가 안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음식점에는 눈길이 가지 않았고, 한식을 갈구할 수 밖에 없는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20대, 30대, 아니 40대 정도만 되었어도 출장을 가서 한식만 찾는 나이가 좀 있으셨던 선배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머리가 숙여진다. 왜 한식을 그리 찾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서, 하루 하루 식사시간과 먹는 음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 하루가 더 빨리 지나간다는 근거가 있는 스토리에 식사시간의 소중함과 먹는 음식의 중요함을 더하니, 한식을 먹을 횟수가 더 가치있게 느껴진다. 내가 먹은 한식의 수보다 내가 먹을 한식의 수가 더 많을 수 있기에 내가 좋아하는 한식을 더 많이 찾고 더 사랑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식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않고, 한식을 지겹게 먹고 있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펴기에는 난 아직 먹어야 할 한식이 더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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